오피니언 이훈범 시시각각

광주 사는 중3생 모군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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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더운데 공부하느라 힘들지요? 그래도 조금만 참고 열심히 하세요. 인생에는 제때 못하면 나중에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많더라고요. 공부도 그런 겁니다. 도연명이라는 옛날 중국 시인도 이렇게 노래했지요. “젊은 시절이 두 번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이 두 번 있지 않나니, 젊을 때 학문에 힘쓸 일이지 세월이 사람을 기다려 주지는 않는다(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그렇게 학업에 전념해야 할 학생들에게 나라 걱정시키고 촛불 들게 한 것은 우리 어른들 잘못입니다. 군(君)에게 죄스러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군이 아고라에 올린 글을 읽고 가슴이 먹먹했더랬습니다. 여러 사람이 퍼 나른 끝에 내 눈에까지 띈 글은 이랬지요. “어제로 저의 인생 설계는 40대를 채 못 가 멈췄습니다. 40대까지 살아있을 수 있나 하는 의문 때문입니다. (…) 어제 저녁 학원에서 돌아온 후 PD수첩을 ‘다시 보기’로 보았습니다. 느낀 점은 단 한 가지입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 언제 어디서 미쳐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공포입니다. 궁금합니다. 이명박을 뽑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나라당을 뽑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 투표권을 가진 우매한 어른들 때문에 투표권이 없는 우리까지 죽게 생겼습니다.”

 지금은 울분이 많이 가라앉았으리라 믿습니다. PD수첩이 사실을 왜곡·과장한 게 밝혀졌으니까요. 번역자의 경고도 무시했다지요. 그래서 주저앉는 소가 광우병 소로, 광우병이 인간광우병으로 탈바꿈했지요. 군만큼 성난 촛불이 두 달 동안 나라를 마비시켰고요.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시판되자마자 줄을 섰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제는 군이 “고기는커녕 과자도 우유도 라면도 안 먹을 거고 사랑하는 연인이 생겨도 키스하지 않고 로션도 쓰지 않으며 약도 먹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를 되새기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생 설계를 40대에서 멈추는 위험한 행동이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막힌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지 않습니다. 군을 억눌렀던 증오의 그림자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드리운 듯해서입니다. 대통령을 잘못 뽑아 군이 죽게 생겼다던 그 증오 말입니다. 대통령이 마음 편하게 캠프 데이비드에 가려고 졸속 협상을 한 게 사실이라도 미쳐 죽는 걸 수입해 국민들에게 먹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왜 어린 학생의 입에서 “살인마”처럼 험한 말을 불러내는 증오가 생겨났을까요.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글래서 같은 이는 그러한 증오를 수요와 공급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수요와 공급에 대해 배웠지요? 증오의 공급자들은 왜곡하거나 한쪽만 부풀린 정보를 흘려 사람들이 특정 집단에 극단적 증오심을 갖게 만듭니다. 그래서 경쟁자를 물리치고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경제적 이익을 얻는 거지요. 증오의 수요자들은 그걸 쉽게 믿어버립니다. 소문의 진위를 확인했다고 경제적 보상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게 있습니다. 보상은 없어도 비용은 치러야 한다는 겁니다. 말끝마다 국민을 외치던 증오 공급자들 부담이 아닙니다. 수요자였던 국민의 몫입니다. 상인들, 택시기사들, 직장인들… 많은 사람이 이미 비용을 치렀지만 국가경제가 떠안아야 할 부담은 그것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큽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증오를 치유하는 비용은 훨씬 더 크지요. 역시 증오로 상처받은 국민이 치러야 합니다.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반유대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던 스탈린은 “사냥감을 고르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용서할 수 없는 증오를 해소한 뒤 침대로 가서 잠드는 것, 세상에 그보다 행복한 건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말을 듣고 분노가 치밀 때 떠올리면 좋을 말입니다. 증오를 부추겨 이득을 얻고 행복하게 잠들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