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달갑지않은 早期발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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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부가 건설업계에 「일감」을 대주겠다고 나섰다.우성건설 부도10일,금리도 안정되고 연쇄부도 도미노현상도 없었는데 정부는 느닷없이 「건설시장 안정화를 위한 정부공사 조기발주방침」을 밝혔다.우선 건설교통부가 올해 국도 건설물량의 7 0%를 1.4분기에 발주하겠다고 했고,곧 이어 조달청도 정부시설공사의 26%를 조기발주한다고 발표했다.한국도로공사의 고속도로,지자체의 지방도.군도 공사도 물론 조기발주 대상이다.
이렇게 되면 올 1.4분기 공사물량은 거의 50%에 육박하고,연말에는 일이 별로 없을 전망이다.
예년의 1.4분기 12~13%,4.4분기 47% 발주관례와는큰 차이가 있다.문제는 정부가 이렇게 일감으로 돕겠다고 나섰는데도 업계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일부에서는『정부가 또 나서서 시장질서만 왜곡시킨다』며 볼멘 소리까지 하는 실정이다.
업계는 우선 일감이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다.지난해 토목건설부문은 8.5%나 성장했고,올해 정부의 공사비 예산도 14%나 늘었다. 지난해 말 수주한 공사도 아직 손대지 못하고 있는데 예기치 않은 조기발주로 업계는 「1년치 공사」를 석달에 해치워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업계는 지금 초비상이다.
이번 수주에 끼지 못하면 1년내내 일감이 부족하게 되고,그 여파는 내년까지 간다.생존이 걸렸으니 시공능력은 차치하고 우선일은 따고 봐야 하는 것이다.담합.덤핑이 생기지 않을 리 없다.게다가 그 해에 끝내야 하는 예산제도 때문에 정부는 공사를 잘게 여러개로 쪼개놨다.
올봄에는 아무나 건설업 간판만 있으면 공사 한두개쯤은 눈감고도 건질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재시장 혼란도 불보듯 뻔하다.공공요금을 아무리 동결해도 물가는 춤을 출 것이고,기능공 쟁탈전은 별들의 전쟁을 방불할 전망이다.『정부는 감독 공무원이나 제대로 확보했는지 모르겠다』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
설계부실의 가능성도 문제다.검토기간이 충분치 못해 또 옛날식으로 공사하면서 설계를 고쳐야 한다면 큰일이다.조기발주를 위해설계를 서두른 흔적은 찾을 수 없는게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결국 정부의 이번 조기발주 방침은 확실히 득(得)보다 실(失)이 더 부각된다.건설업계의 소화불량은 물론 경기과열 특히 부실공사의 가능성이 가장 문제다.
정부 건설정책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는 공사발주시기 선택은 이래서 신중해야 한다.
서두르는 발주는 항상 부실공사와 직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부당국자는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음성직 전문위원 工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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