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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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호 02면

여름 빛과 여름 비를 흠씬 먹어 녹음 짙은 산길을 걸었습니다. 습기 먹은 나뭇잎 쌓이고 쌓여 중화된 향기가 사방에서 피어납니다. 산그늘이 서늘합니다. 옅은 구름을 뚫고 이제는 두꺼워진 참나무 잎 사이를 비집고 산길에 생명 가득한 빛이 내립니다. 빛이 충만합니다. 길을 멈춥니다. 조용히 빛을 즐깁니다. 멍한 눈에 보이는 것은 덩굴 풀잎과 나무 밑동, 그리고 습기 먹은 흙과 돌멩이뿐입니다.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잡다합니다. 그러나 모두 살아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꼭 더해야 하는지. 혹은 무엇을 꼭 빼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자리에 그렇게 그것들이 있는 것이 바로 ‘살아있음’입니다. 어울림입니다.

각자가 서로를 이룹니다. 그것이 아름답습니다. 움직이는 산이고, 살아있는 자연입니다. 산에는 산이 없습니다. 그저 마음이 있습니다. 이편 산길 어느 한 구석이 그러하면 아마 저편 세상도 그러하겠지요.
멍한 눈으로 본 멍한 세상에 허튼소리가 한없이 잡다합니다.


농사꾼 사진가 이창수씨가 사진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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