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무분규 교섭’ 작심 1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현대차 노조)가 지난해 일궈낸 ‘단체교섭 무분규 타결’ 기록을 1년도 못 돼 포기한 채 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해 현대차 노사는 시민과 노조원들의 파업 반대 여론 속에 1997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분규 없이 단체교섭을 마쳤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와 관련, 30일 현대차 노조에 “노사 간 교섭이 미진하므로 자율적 교섭을 더 하라”는 행정지도 결정을 내렸다. 현대차 노조가 중노위의 결정을 무시하고 파업하면 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 돼 절차상 불법 파업이 된다. 중노위는 이날 기아·쌍용차와 만도 등 110개 사업장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의 행정지도를 결정했다.

현대차 노조는 이날 오후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노조집행부를 쟁의대책위 체제로 전환키로 했다. 2일 주·야간 2시간씩 부분파업을 벌이고, 다음 주부터는 회사 측의 태도에 따라 파업 강도를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노조는 이날 오전 6차 대각선교섭에서 “1일부터 임금협상 등 지부교섭안을 다룰 실무협의를 시작한다”고 합의한 뒤 “지지부진했던 지부교섭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틀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결국 본격 교섭을 하루 앞두고 파업부터 결정한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한 달여 동안 대각선교섭을 해오면서 “금속노조 차원의 중앙교섭 없이는 지부 차원의 교섭도 없다”며 금속노조와 공동보조를 취해왔다. 이번 파업 일정도 지난달 29일의 금속노조 결정을 그대로 따랐다. 대각선교섭은 금속노조 전체에 적용되는 중앙교섭안과 현대차에만 적용되는 지부교섭안을 함께 다루는 교섭 방식이다.

그동안 금속노조는 “중앙교섭안을 논의 대상으로 인정해야 지부교섭안을 다룰 수 있다”고 고집해왔다. 반면 회사 측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중앙교섭안은 다른 240여 개 회사에도 적용되는 것이어서 단위 기업 차원에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는 입장이었다.

윤여철 현대차 사장은 “지난해 시민·경제계로부터 경영권까지 양보한다는 비난을 감수하며 무분규 단체협상을 끌어냈는데 올해는 임금 논의도 못한 채 파업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장규호 현대차 노조 대변인은 “1일부터 실무교섭을 통해 협상을 본격화하기로 한 만큼 파업을 위한 파업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