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에세이] ‘인민의 눈’ 두려운 중국 관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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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과거에는

황모씨(32)가 충칭(重慶)시 중급법원 내 범죄제보센터 앞에서 초조하게 서성댔다. 한참을 망설이다 힘겹게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에 적지 않은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해 했다. 그러곤 재빨리 검찰관에게 다가가 “중요한 제보가 있다. 보복당할까 두렵다. 둘만 얘기할 수 있느냐”고 속삭였다. 검찰관이 그를 면담실로 안내했다. 단 둘이었지만 황씨는 계속 손을 떨며 안절부절못했다.

검찰관은 “여긴 녹음기도 카메라도 없다. 당신 동의 없이는 육필 기록만 할 뿐 녹음하지 않겠다”고 안심시켰다. 황모씨는 그제야 한 기관장의 허가 업무 관련 비리를 털어놓았다. 증거도 제시했다. 이 기관장은 한 달 후 체포됐다.

#지금은

장모씨(45)가 인터넷에 접속한다. 최고인민검찰원 홈페이지로 들어간다. 중국 지도가 나온다. 장쑤(江蘇)성 지역을 클릭한다. 그러자 곧 장쑤성 내 모든 검찰원의 제보센터가 일목요연하게 떠오른다. 원하는 지역을 선택해 클릭하면 그 지역 제보센터에 접속된다.

제보 내용을 기술한 뒤 입력 키를 누르면 동시에 비밀번호가 부여된다. 이 비밀번호를 사용해 수시로 제보 내용의 처리 과정과 결과를 조회한다.

중국의 비리 제보 문화가 이렇게 변했다. 출발은 2001년이지만 지난해부터 본격화했다. 검찰기관에 직접 나가 불안한 마음으로 제보하던 문화가 사이버 공간에서 안전하고 간단하게 처리되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제보의 폭발적 증가를 불러왔다.

사이버 제보가 2001~2003년에는 연간 1만여 건이었지만, 2004~2006년에는 연간 평균 2만여 건, 그리고 2007년 이후는 3만여 건으로 늘었다.

시민 고발정신도 부쩍 강해졌다.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거나 익숙하지 않은 농민 등도 용감하게 제보 센터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최고인민검찰원 관계자는 “2003년부터 5년간 처리된 사건이 총 100만여 건인데, 이 가운데 70%가 인민 제보로 이뤄진 것”이라고 발표했다. 올 1월 횡령 혐의로 체포된 페이훙취안(裵洪泉) 선전(深<5733>)시 중급인민법원 부원장, 지난달 20일 구호자금 횡령 혐의로 구속된 위웨원(余躍文) 허난(河南)성 안양(安陽)현 공상연합회 주석도 모두 제보로 덜미를 잡혔다.

최고인민검찰원은 지난달 23일 ‘인민에 의지해 징벌과 예방을 모두 쟁취하자’는 주제로 제10차 ‘제보 고취 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최고검찰원 제보담당자는 “인민 제보는 반부패의 동맹군”이라며 “제보자의 안전과 비밀은 물론 현실적인 보상과 혜택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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