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국의 쌀 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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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에 대한 쌀 추가제공 문제와 관련,미국이 결국 속을 드러냈다.제임스 레이니 주한(駐韓)미국대사가 대북(對北)쌀 지원의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미국이 북한에 쌀을 주고 싶어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와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는 그동안 의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레이니 대사의 발언은 우회적이고도 외교적인 표현을 사용하고는있지만 골자는 크게 두가지다.첫째는 식량난에 따른 북한내부의 불안이나 돌발사태로 한반도의 안정이 깨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것이다.그래서 북한에 쌀을 지원해야 하고,그 방법으로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같은 국제적 협조 형태를 생각할 수있다는 것이 두번째 골자다.
북한의 식량난 때문에 한반도의 불안이 빚어져서는 안된다는 레이니 대사의 우려에는 우리도 동감이다.그런 불안이 임박했다고 우리가 생각하면 우리라고 쌀 지원을 마다하겠는가.다만 북한의 식량사정이 정말로 그렇게 절박하다고 보지 않기 때 문에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을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식량을 미끼로 쓰고 싶다」는 레이니 대사의 말에 비춰 미국은 북한에 쌀을 제공하면 개방효과가 있고, 북한이 태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이다.그러나 15만의 쌀을 지원한 다음 남북한관계가 오히 려 악화된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또 미국의 생각처럼 식량을 제공할 경우 누가 주느냐도 문제다.「합작형태」란 표현으로 KEDO와 같은 형태를 시사한 레이니대사의 말로 미뤄 미국이 앞장은 서되 경제적 부담은 다른 나라에 전가(轉嫁)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그 비용을 부담할 나라로 미국은 우리를 지목,설득하려 할 것이다.그 설득대로 될 경우 결국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돈독해지고, 우리는 재정적 부담만 안고 더욱 볼썽 사납게 될 것이다.
우리를 배제하고 미국만 상대하겠다는 북한의 의도가 결과적으로 관철된 꼴이기 때문이다.그런 비용을 우리가 부담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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