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월드컵 공동개최 제의 속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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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의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제의가 파문을 일으키면서 북측의 진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이를 통해 해외투자 유치,관광수입 증대등과 함께 대외적 이미지 개선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또 당국간 접촉은 피하면서도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 경협을 가속화하려는 의지도엿보인다.이밖에 큼직한 국제행사 유치를 통해 대 내 정치안정을노리는 포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번 제의는 우선 그 형식에서부터 과거와 차이가 있다.종래 북한의 대남제의는 일방적인 직접제의 형식을 취해왔다.성사여부와관계없이 남북관계의 기선을 제압하고 평화 제스처를 대외에 선전하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제축구연맹(FIFA)에 자문을 구하는 우회적 형식을 취했다.특히 아벨란제 회장등 연맹 핵심인사들이 개최지를 일본으로 택하려는 듯한 아슬아슬한 시점을 택함으로써 한국측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는 점 이 돋보인다.북측 진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세계청년학생축전」류의 정치성 국제행사에나 집착하던 북한이 전세계적 관심사인 애틀랜타올림픽 참가를 밝힌 것과도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테러국가로 지목돼 왔던 북한이 이같은 이미지 개선 없이는 해외투자유치나 관광사업등을 통한 경화 (硬貨)확보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또한 김일성(金日成) 조문파동이후 당국간 대화를 거부해온 북한이 남북 축구협회간 실무접촉이라는 「민간채널」을 통해 남북대화의 물꼬를 틀 생각도 비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이는 정부가 대북지원 전제조건으로 요구해온 「태도변화」를 모색하려는 조치로 이해될 수 있다.월드컵유치에 대한 남한의 높은 관심이나 명분을 고려할 때 이번 제의를 우리측이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있는 것같다.
한편 6년뒤에 있을 월드컵대회의 유치를 통해 북한의 정권안정을 도모하려는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남북공동 개최가 성사되면지난 66년 8강까지 올랐던 북한축구의「옛 영화」와 함께 지금보다 살기 좋았던 6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가 북한의 제의를 받아들이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적지 않다.2002년은 북한-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간에 합의된 대북경수로지원계획에 따라 경수로의 핵심부품이 전달될 시점이다.북한핵의 투명성은 핵심부품의 전달이전에 규명되도록 돼있다.
북한이 이 시점에 가서 순순히 투명성 규명에 응해 올지는 미지수인데 남북공동개최가 남북간에 합의되고 월드컵 유치가 확정됐을 때 북한이 딴청이라도 부린다면 문제는 여간 심각한게 아니다.북한의 협상스타일로 볼 때 자칫 월드컵이 북한의 핵협상카드로활용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밖에 실무협의 과정에서 남북한이 신경전을 벌여야 할 사안도하나둘이 아니다.
북한의 제의가 반가운 소식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에 대한 성급한대처는 멀지않은 장래에 골칫거리로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않다.
김용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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