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늦둥이 아들이 본 루쉰 그리고 중국 현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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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나의 아버지 루쉰
저우하이잉 지음, 서광덕·박자영 옮김
도서출판 강, 2만2000원

중국 현대 문학사에서 루쉰(魯迅: 본명 周樹人)이 차지하는 비중은 측량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그의 대표작 『아큐정전(阿Q正傳)』과 『광인일기(狂人日記)』로부터 쏟아지는 불빛이 현대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아주 조밀하게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중국 문학의 대문호로 불리기도 하는 그의 자취는 그래서 늘 세인들의 관심거리다.

루쉰의 늦둥이 아들로 태어나 자신의 아버지 이름에 얹혀 굴곡 많은 중국 현대사를 살아온 저자의 회고는 그래서 눈길을 끈다. 예리하면서 통렬한 문장으로 이름 높은 루쉰은 그에게 있어서는 그저 자애로운 아버지면서도 약간은 괴팍한 문필가였다.

“아버지가 창문 앞에 서서 바깥으로 무언가를 던지고 있었다…수고양이의 성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 손에서 50개비 들이 철제 담배 케이스가 모두 발사됐을 때, 나는 재빨리 뜰로 내려가 울퉁불퉁해진 ‘포탄’ 몇 개를 주워 아버지가 또 쓸 수 있도록 갖다 드렸다. (수고양이가 암컷을 시끄럽게 불러) 아버지는 사색을 방해받게 되자 참을 수 없어 반격에 나섰던 것이다.” 어린 저자의 눈에 비친 루쉰의 면모가 재미있게 떠올려진다.

루쉰은 생존 당시 대륙을 통치했던 국민당에 대해서는 매우 통렬한 비판자였다. 그래서 1949년 집권한 중국 공산당은 그를 최고 지식인으로 치부했다. 공산당 집권 후에도 루쉰은 권력을 향해 통렬한 비판을 할 수 있었을까. 루쉰이 세상을 뜬 해는 1936년. 그래서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대목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루쉰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재미있다. “그가 살아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에 1957년 상하이(上海)에 왔던 마오는 의외로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단다. “내 생각으로는 감옥에 갇혀 글을 쓰고 있거나, 아니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아무 소리도 않고 가만히 있었을 것 같소”라는 것. 공산당의 입장에서도 만만찮은 ‘잔소리꾼’인 루쉰의 존재감이 적잖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암시한 대목이다.

저자는 아버지 루쉰을 축으로 중국 현대사의 이모저모를 그렸다. 부친에 대한 회고도 회고지만 이런저런 정치적 소용돌이와 문화대혁명 등 파란이 적잖았던 현대 중국의 역사 속을 헤쳐왔던 중국인들의 삶을 담담하게 글로 옮겼다. “과거는 연기처럼 사라진다(往事如煙)”고 했던가. 그래도 한 권의 글로 우리 곁에 남아 읽히는 중국 문호 루쉰 일가의 회고담이 염천(炎天)의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힌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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