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44년 무관의 저주 풀겠다” 독일 “전차군단 네 번째 별 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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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의 스페인과 ‘힘’의 독일이 결승에서 만났다. 유럽 축구의 정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일전이다. 터키·러시아의 돌풍을 기대한 팬도 많았겠지만 결승전 매치업으로 이만한 카드가 없다. 스페인은 27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빈 에른스트 하펠 슈타디온에서 열린 유로 2008 준결승전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의 러시아를 3-0으로 완파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은 30일 오전 3시45분(한국시간)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히딩크 마법 푼 저주의 팀=스페인은 늘 우승 후보지만 번번이 좌절하는 ‘저주의 팀’이다. 1964년 자국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 우승 이후 44년간 무관의 신세였다. 그들은 이번 대회에서 몸을 낮췄다. 매사 낙천적인 그들은 “8강 이상만 가자”고 했다. 그런 겸손함으로 ‘히딩크의 마법’을 풀었다.

스페인은 조별리그 1차전에서 4-1로 대파했던 러시아를 준결승전에서 다시 맞닥뜨렸지만 암초 가득한 좁은 해협을 건너듯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스페인은 모든 면에서 우위였지만 상대가 공을 잡으면 서너 명이 협력수비를 했고 공격 때도 원터치 패스를 주고받는 등 ‘교과서’대로 경기를 풀었다. 히딩크 감독이 경기 후 “원터치 패스로 밸런스를 유지하는 스페인을 쫓아다니다 우리 팀은 지쳐 갔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0-0으로 전반을 마친 스페인은 후반 5분 사비 에르난데스의 골로 균형을 깼다. 28분 구이사의 추가골, 37분 다비드 비야의 쐐기골이 이어졌다. 때로는 땅볼로, 때로는 부드러운 로빙볼로 연결된 작품 같은 패스에 러시아 포백수비는 허물어졌다.

◇너무도 다른 스페인-독일=‘무적함대’ 스페인은 부드럽게 물살을 헤치고 나아간다. ‘전차군단’ 독일은 장애물을 밟고 거침없이 달려간다. 스페인은 창의력과 기술로 상황을 타개하는 데 비해 독일은 체격의 우위와 조직력을 앞세워 상대를 굴복시킨다. 스페인은 이번 대회 5경기에서 104개의 슈팅을 쏘았다. 참가 팀 중 최다다. 사비 에르난데스, 세나, 이니에스타, 다비드 비야 등 네 미드필더의 조화로운 플레이는 힘들이지 않고 슈팅 기회를 만들어냈다.

독일은 꿋꿋하게 결승까지 살아 남았다. 조별리그에서 크로아티아에 1-2로 진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1-0으로 잡고 힘겹게 8강에 올랐다. 독일은 8강전과 4강전에서도 결코 우세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집중력과 독일 특유의 효율성으로 승리했다. 독일의 4강전 유효 슈팅은 3개뿐이었지만 그 모두가 골망을 뒤흔들었다. 메이저 대회에서 유독 불운했던 스페인과 달리 독일은 월드컵과 유럽선수권에서 세 차례씩 우승한 ‘토너먼트의 왕’이다.

유럽 현지의 전반적인 관측은 매 경기 꾸준한 경기력을 보인 스페인의 우세지만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히딩크 감독조차 “원터치 패스로 전개되는 스페인의 공격 축구는 대단히 위력적이지만 독일도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경기를 한다. 정말 예상하기 힘든 결승전”이라고 말했다.

빈(오스트리아)=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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