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새얼굴 대거등장 인물파괴-신한국당 썰물.밀물 人士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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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년 총선을 100여일 남짓 남겨놓고 여권에 「인물파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지긋한 나이의 경륜대신 새 얼굴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마치 장강(長江)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쳐내는 듯한 이 흐름은 지난 6월을 필두로 간간이 시작되다 어느새 봇물처럼 이어지고 있다.
신한국당(가칭)의 전.현직 중진의원들의 정계 은퇴 또는 총선불출마 선언이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25일에는 남재희(南載熙)전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강성모(姜聖模)전의원.정순덕(鄭順德).황인성(黃寅性).김효영(金孝榮)의원의 불출마 선언도 뒤를 이을 것이라고 한다. 지난 6월 안찬희(安瓚熙)의원이 후진 양성을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한 것을 필두로 이제 이같은 의원은 신한국당에만 10명선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이같은 썰물그룹은 지금까지 가시화된 인사들 외에도 20여명이 더 남아있다는 후문이다.
이들이 아직 근력있는(?)나이에 금배지의 꿈을 포기하는 것은예사로운 일이 아니다.불과 1년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南 전의원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불출마의 변으로 『시대가 달라졌고 너무 정치를 오래해서』라고 했다.
그의 말에서 보듯 이런 흐름은 노태우(盧泰愚)씨 부정축재사건에 이은 5.18특별법 제정등 잇따른 과거 청산정국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들 10명중 6명이 12월 들어서 잇따른 불출마를 선언하고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물러나는 썰물그룹은 대부분 60~70대의 고령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72세의 김효영의원은 4선이다.9대부터 국회의원을시작해 3,5,6공화국을 거쳐 정치를 해왔다.『정치에 회의를 느낀다』는 박경수(朴炅秀)의원을 제외할때 불출마 예정자중 나이가 가장 젊은 정순덕의원도 60세다.
이들은 퇴진의 변으로 하나같이 『후진 양성』을 내세우고 있다. 때문에 당에선 부인하지만 이들이 물러나는 배경에 유.무형의압력설이 돌고있다.그것이 자의든 아니면 타의에서든 여권내 일련의 세대교체와 역사청산 흐름에서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이들과 맥을 달리하는 경우긴 하지만 정호용(鄭鎬溶)의원이 5.18특별법 제정에 이은 여권의 정국 운영을 비판하고 탈당한 것도 한 예다.
즉 구여권의 핵심이자 청산대상으로 지목된 鄭의원이 탈당을 택했다면 여권내에서 청산 대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자리가보장되지도 않은 이들이 「은퇴」라는 명분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셈이다. 실제로 물러나는 이들의 자리를 메울 신진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너무나 대조적이다.당장 영입설이 돌고있는 재야인사.전문가그룹은 30~40대의 개혁성과 전문성을 지닌 인사들이 주류다.게다가 모두 정치신인들이다.
영입이 성사단계에 있다는 심재철(沈在哲)씨는 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의 30대후반이다.현재 노동자신문 발행인인 이태복(李泰馥)씨만 해도 노동운동가로 40대중반이다.
뿐만 아니다.아직 이름을 거명할 수 없는 인사들 중엔 경제계와 학계.법조계등의 30~40대 인물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는 후문이다.
결국 묵은 인물을 뒤로 빼는 대신 젊고 참신한 인물을 중용하는 셈이다.때문에 이같은 흐름 뒤에는 여권의 내년도 총선전략도철저히 작용했다는 분석이다.한마디로 수도권 등에서 「신(新)정치와 구(舊)정치의 대결구도」를 형성하겠다는 의 미다.이는 다분히 국민회의등 야권을 의식한 구도다.
5.18특별법 제정등 과거청산 정국과 함께 여야 구분이 없어진 마당에 여권 스스로가 변화와 개혁을 앞세운 새로운 인물군으로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의미가 배어있다.
그리고 이같은 구도는 두 전직대통령 구속으로 시작된 청산정국의 끝을 총선에까지 연결한다는 여권 핵심부의 의중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이날 『내년 총선은 인물경쟁이 승패를 좌우한다』며 『공천이 끝나고 나면 야당과의 차별화가 뚜렷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밀물과 썰물같은 인물군의 교체를 바라보는 여권내에서도과연 이같은 실험이 성공할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여권의 전통적 기반이 보수와 안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칫 이런 구도가 기존의 기반조차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는 신중론이 일고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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