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경제자유화의 국가지도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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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소하지만 어쩐지 마음에 걸리는 일들은 흔히 중요한 함언들을품고 있다.전직 대통령들을 대하는 현 정권의 태도도 그런 일들가운데 하나다.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과 그의 추종자들이 지은 죄를 법으로 심판하는 일에 대해선 새삼 얘기할 것이 없다.실은 「하늘은 용서해도 나는 용서 못한다」고 절규해온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중에법의 판결을 놓고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될 실망 과 울분의 사회적 영향을 걱정해야 될 판이다.그러나 할머니 제사를 위해 고향에 내려간 全씨를 새벽에 깨워 압송해온 일은 어느 모로 보나지나쳤다.그리고 수사관들은 전직 대통령의 품위를 지키려고 애쓰는 全씨에게 최소한의 배려도 하지 않았다.
최규하(崔圭夏)전대통령의 예금 계좌들을 수사한 일도 마찬가지다. 다른 면들에서의 평판은 어떠하든 崔씨는 보기 드물게 청렴하다는 세평을 얻었다.그래서 느닷없는 계좌 수사는 정당화되기 어렵다.더구나 그 계좌들은 부인 명의라고 한다.직 업외교관의 아내였지만 후덕한 시골부인의 모습을 지녔던 홍기(洪基)여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일은 씁쓸한 뒷맛을 오래 남길 것이다. 지금 여론의 주류는 그런 일들은 큰 목표를 추구하는 데서 나오는 사소한 일들이라고 보는 듯하다.
과연 그런 일들이 사소한가.법은 엄격해야 하지만 매몰차서는 안된다.매몰찬 법은 그것이 추구하는 가치인 정의에 흠집을 낸다.어느 예술가 가 빚은 정의의 여신 얼굴에 매몰참이 어리는가.
환갑을 여러해 전에 넘긴 노인에게 『이제 처지가 어려우실 텐데 아침이나 든든하게 드십시오』라고 수사관이 말했다고 법의 정신이 훼손되었을까.마지막 자유인 「침묵의 자유」마저 앗기고 10월유신과 제5공화국을 찬양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소신을 앞세워 침묵하는 전직 대통령을 그렇게까지 핍박해야 하는가.
생각해보면,그런 매몰참은 사회의 피륙을 근본적으로 갉는다.사회는 개인들의 인정과 신의를 바탕으로 삼는다.우리 선조들이 효(孝)를 충(忠)앞에 둔 것은 바로 그런 사실을 통찰한 데서 나왔다.그래서 부모의 잘못을 권력에 고자질하도록 아이들을 가르치는 전체주의 사회들은 필연적으로 황폐해지고 결국엔 망한다.
지금 검찰을 지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두환정권에서 요직들을맡았을 것이다.그들이 얼굴에 기름진 웃음을 띠고 全씨를 처벌하는 일을 기자들에게 설명할때 우리 자식들은 무슨 교훈을 얻을까. 「공소권 없음」이란 판단을 검찰이 갑자기 바꾸어도 사표를 낸 검사가 없다는 것을 얘기하면 세상을 모른다는 핀잔을 받을 것이다.그러나 몇 해 전까지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을 수사해야 하는 곤혹스러움이 어린 얼굴조차 볼 수 없다는 사실 은 서글픔을 넘어 두렵다.
그러나 당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대통령의 권위가 손상을 입는 것이다.전직 대통령들이 최소한의 권리와 품위도 지키지 못하는 초라한 모습을 보인다면 대통령의 권위는 어쩔 수 없이 줄어든다.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지금 우리 사회에선 경제 자유화가 무엇보다도 시급한 터라 특히 그렇다.권한을 쥔 관료들의 끈질긴 저항,독점적 이익을 지키려는 국영기업 종사자들의 거센 항의,그리고 지역 이익을 국익보다 앞세우게 마련인 국회의원들의 판단을 극복하고 경제 자유화를 이루는 일은,지금 프랑스 사회를뒤흔드는 파업이 극명하게 보여주듯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자유화는 대통령의 큰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일단 권력을 놓으면 대통령도 후임자로부터 매몰찬 대접을 받고 초라해지리라는 생각을 관료들과 국회의원들이 지닐 때 대통령은 얼마나 큰지도력을 보일 수 있을까.
『왕은 왕을 죽이지 않는다.』 싸움터에서 맞선 이교도들에게도너그러웠고 신의를 지켜 기독교권에 「살라딘」이란 이름으로 널리알려진 회교권의 현군(賢君)이 남긴 말이다.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는다.
(소설가) 복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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