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선진국 재정적자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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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2일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이 통과된 후 잠시 해외에 다녀왔다. 독일에서는 재무부의 예산담당 차관보를 만났는데 이 사람은 만나자마자 재정적자 이야기를 꺼내더니 재정적자 축소계획으로 얘기를 끝마쳤다.금년 540억마르크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99년까지 290억마르크 수준으로까지 줄이기 위해 내년도 세출예산을 금년보다 1.3% 줄였으며,이런 긴축기조를 상당기간 지속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우리나라의 금년도 재정수지는 예산을 짤 때는 GNP의 0.3% 적자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0.5%이상의 흑자가 날 것으로전망되고 있다.국가채무도 GNP의 7% 수준에 불과하고,국가채무보다 많은 국가채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국도 재정적자와 국제수지 적자라는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다 못해 의회가 2002년까지 저소득층 및 고령자에 대한 의료비 등 사회복지 지출을 중심으로 8,940억달러의 예산을 삭감하라고 요구하면서 96년도 예산을 통과시켜주지 않고 있어 이미 세차례나 연방정부의 기능이 중단되고 있다.
일찍이 80년대부터 재정적자 축소에 심혈을 기울여 91년에 흑자재정을 이루었던 일본도 92년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공공투자 지출을 늘린 결과 다시 GDP의 2.7% 수준의 적자를 내고 있다.우리나라만큼 재정이 건실한 나라가 세상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방심할 수만은 없다.우리나라는 아직도 복지혜택을 확대해 나가는 단계에 있는데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는 선진국들이 밟아간 전철을 따라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모든 선진국들이 복지재정으로 인한 재정적자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좀 의욕적인 적자축소 계획을 세웠다가 공무원노조의반발을 사 이 추운 겨울에 한달씩이나 모든 공공교통시설이 마비돼 있는 프랑스가 그 대표적인 예지만 독일.영국 .이탈리아.스페인.벨기에 등은 물론 대표적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핀란드등도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복지혜택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문제의 핵심은 간단하다.단기간의 복지냐,장기간 지속할 수 있는 복지냐 하는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복지혜택을 받는 것도,그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같은 국민이며 단 한푼이라도 보태줄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오늘날의 세대가 능력 이상의 복지 혜택을 받으면 결국 그 다음 세대에 가서 능력이상의 부담을 질수밖에 없다.
선진국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 하는 것 만이 아니다.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느냐,어떻게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경고가 오히려 더 소중한 교훈일 수도 있다.
이영탁 재정경제원 예산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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