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재협상 효과’라지만 성난 민심 달래질지 미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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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협상과 추가협상의 차이는=재협상과 추가협상은 국제법으로 정의된 용어는 아니다. 이 때문에 입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사용된다. 크게 봐서 재협상은 4월 18일 맺은 기존 협정문을 고치는 방식의 협상을 말한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기존 협상을 폐기하고 원점에서 시작하는 전면 재협상을, 한나라당은 부분적인 수정을 주장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추가협상은 기존 협정문은 그대로 두고 보완적인 내용을 별도의 문서로 만들어 양국이 교환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계약서는 그대로 놔두고 부칙을 추가하는 것이다.

지난달 양국이 협정문에 없는 ‘광우병 추가 발생 시 수입중단 가능’ 규정을 외교 서한으로 교환한 것도 추가협상이었다. 양국은 지난해 4월 자유무역협정(FTA)을 타결하고 두 달 뒤 추가협상을 한 적이 있다.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확실하게 막으려면 협정문을 고치는 재협상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대가가 따른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정착돼 미국이 과거처럼 ‘수퍼 301조’ 식의 직접적인 무역 보복을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미 FTA 비준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방위비 분담 협상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한·EU FTA 등 다른 협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상 상황을 감안해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경제·외교 라인에서 반대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팽팽하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했다가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며 “상대편이 있기 때문에 재협상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최승환 경희대 교수는 “이번에 재협상으로 문제를 풀지 않으면 앞으로 한·미 양국이 협력해야 할 사안마다 국민의 반발을 살 것”이라며 “재협상은 미국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추가협상 어떻게 하나=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에 가는 것은 한·미 간 추가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가협상의 핵심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양국의 수출입업체가 자율 규제를 하면 양국 정부가 이를 지키도록 문서로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또 양국 정부는 수출입업체를 관리·감독하고, 그래도 문제가 되면 한국 정부가 검역 과정에서 걸러내는 식이다.

정부 관계자는 “외형상 자율 규제이지만 정부가 관리·감독하고 이행을 보장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강제 규제나 다름없다”며 “4월 협상의 골격은 월령 제한 없는 수입이었기 때문에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는 것은 사실상 재협상에 준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정부에 대한 분풀이로 미래까지 망쳐서는 안 된다”며 “월령 표기를 의무화해 소비자가 미국산 쇠고기를 골라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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