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산책>"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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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지난달 25일 사망한 프랑스 영화감독 루이 말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원제 Ascenseur pour l'Echafaud)가 중앙비디오테크(751-9991~4)에서 출시됐다.아직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이 작품은 58년루이 말감독이 25세때 만든 흑백영화로 누벨 바그의 효시격으로꼽힌다.조감독.카메라맨을 거쳐 감독에 입문한 루이 말은 누벨 바그 감독의 범주에 들지만 평론가 출신인 장 뤼크 고다르.프랑수아 트뤼포.클로드 샤브롤등에 비 해 급진적 영화형식을 추구하지는 않았던 인물.『연인들』『애틀랜틱 시티』『데미지』등이 보여주듯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화두는 우연성에 의해 지배받는 삶의 부조리다.
『사형대…』는 이같은 작품경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다.부유한 무기상의 부인 플로랑스는 남편의 부하직원 쥘리앵과 깊은 사랑에 빠져 남편살해를 공모한다.플로랑스로부터 남편의 권총을 받은 쥘리앵은 자신의 사무실 창문에서 밧줄을 타고 사장실로 들어가 그를 쏴죽이고 자살로 위장한다.그러나 퇴근해 차를 타다 창문에 밧줄이 그대로 걸려 있는 것을 본 쥘리앵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다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만다.경비원이 전원을 내려버렸기 때문이다.쥘리앵이 엘리베이터 에 갇혀 있는 그날밤 쥘리앵의 차를 훔쳐탄 한쌍의 남녀가 차에 있던 쥘리앵의 권총으로독일인 부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쥘리앵은 우여곡절끝에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지만 독일인 부부 살해 혐의로 체포된다.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에 있었다는 말을 해야되는 기막힌 상황.영화는 곳곳에서 이렇게어긋나는 삶의 부조리한 양상을 절묘한 구성으로 보여준다.
특히 쥘리앵의 결백을 증명해 줄 것으로 믿었던 필름이 독일인살해혐의는 벗겨줬지만 사장살해의 결정적 증거로 떠오른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가 가진 역설의 미학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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