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화와 12.12-당시 계엄사령관 全씨와 마찰 강등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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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승화(鄭昇和)전육군참모총장에게 12.12사건은 전두환(全斗煥)씨등 신군부측과의 갈등과 악연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는 79년 당시 계엄사령관이었으나 신군부의 조직적인 반란으로 서울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전보안사인사처장 허삼수(許三守)대령과 전육군범죄수사단장 우경윤(禹慶允)대령에게 체포되는수모를 겪어야 했다.
12.12 서곡을 알리는 체포과정에서의 총소리가 멎은 후 鄭총장은 이듬해1월 이등병으로 강등됐다.
鄭총장의 12.12 악연은 10월26일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 시해사건당시 김재규(金載圭)중정부장의 초청으로 궁정동 중정부장 집무실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0.26사건 이후 실권을 잡은 전두환 합수부장(보안사령관)의 주도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군최고수뇌였던 鄭총장은 계엄사령관으로 추대된다.
말이 계엄사령관일 뿐 당시 실질적인 최고실력자였던 全씨가 국정전반에 걸친 모든 권한을 좌지우지하는 실정이었다.
全씨가 모든 정보와 수사업무를 독점하는등 지나친 월권을 보이자 鄭총장은 全씨를 동해안 지역으로 전출시킬 계획을 노재현(盧載鉉)전국방부장관과 논의한다.
그러나 이를 사전에 눈치챈 全씨의 역공으로 김재규의 내란음모를 방조한 혐의로 그는 전격구속됐다.
그뒤 80년 3월13일 국방부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10년형을선고받고 군적을 박탈당해야 했다.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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