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들 사표, 재·보선 참패가 결정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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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수석들의 일괄 사표 소식이 청와대 기자실에 알려진 건 6일 오후 5시30분이 넘어서였다.

이동관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과 불교계 원로들과의 오찬 회동 결과를 브리핑하던 말미에 “사실 그동안 두어 차례 수석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류우익)대통령 실장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운을 뗐다. 뒤이어 “실장이 대통령에게 사의 표명 소식을 전했지만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며 일을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대통령이 만류를 좀 했다”고 말한 뒤 “그런데 오늘은 전원이 사표를 써서 제출했다”고 불쑥 말했다. 갑작스런 발표에 기자실은 발칵 뒤집혔다.

그만큼 현충일인 6일 오후 청와대 수석들의 일괄 사표 소식은 전격적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에 따르면 류 실장과 청와대 수석들은 지난달 말부터 사표를 준비해왔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약 2주 전부터 수석들 사이에서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고 말했다.다만 이런 와중에도 일부 수석은 “지금 물러나는 건 무책임하다”며 일괄 사의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이 바람에 수석들 간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기류를 단번에 바꿔놓은 건 6·4 재보선 참패였다고 한다.

촛불 집회가 계속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재보선 결과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참담한 결과로 나타나자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선 “이대론 안되겠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한 관계자는 “4일 밤 재보선 결과가 나온 뒤 내부 회의에서 정부·청와대의 고위급 인사들이 일괄 사의를 표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라 제기됐다”고 귀띔했다.

이에 따라 현충일 오후 류 실장과 청와대 수석들은 3시간 가까이 마라톤 회의를 거쳐 일괄 사의를 결정했 다.한 관계자는 회의 과정에서 6·10 민주화항쟁기념일(10일)-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숨진 효순·미선양 추모 6주기(13일)-민주노동의 16일 총파업 예고 등으로 시민들의 집회가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류 실장과 청와대 수석들이 이 대통령의 인적쇄신 구상에 걸림돌이 돼선 안된다는 결단을 내린 셈이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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