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83. 남편의 외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던 당시의 필자와 남편 게디니.

남편 아르만도 게디니는 가수 패티 김을 위해서도 참으로 많은 외조를 했다. 결혼 당시 가수 활동을 잠시 쉬고 있었지만 이미 그는 내가 자기 혼자 차지하고 살기에는 너무 큰 사람이고, 자신의 아내이기 이전에 팬들의 가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또 내가 무대를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당시 내가 얼마만큼 상처를 받았고, 심신이 지쳐 있었는지를 알았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나를 지켜보기만 했다. 마침내 내가 다시 무대에 설 결심을 했을 때, 그는 우리 가족의 삶에 어떤 변화가 올지를 뻔히 예측하면서도 조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내 뜻을 존중해주었다.

그는 가수 패티 김과 인간 김혜자의 모든 것을 있는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믿고 후원해준 사람이 내 어머니라면 그 다음 후원자는 바로 남편이다.

남편은 아내로서 가장 큰 핸디캡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의 음식 솜씨를 단 한 번도 흉보거나 질책한 적이 없다. 심지어 내가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는 것을 알고 이런 말로 나를 감동시키기까지 했다.

“패티! 나는 음식을 잘 만드는 여자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야. 나는 지금의 당신 모습 그대로를,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가수 패티 김을 사랑해서 결혼한 거야. 내가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음식 만드느라 부엌에서 분주한 당신보다는 예쁘게 화장하고 멋지게 차려 입고 나를 맞아 주는 패티가 나는 훨씬 좋아.”

이 말을 듣고 나는 “이거야말로 둘도 없는 천생연분이로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음식을 못하는 나로서는 이 이상의 굿 뉴스가 없었다. “좋아요! 그거라면 내가 자신 있어요!”라고 했다.

30년이 넘도록 남편과 살아오면서 나는 늘 내가 남편을 이겼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는 일이 없었고, 내 의견에 반대를 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남편은 늘 나를 이기고 있었다. 백 가지 사소한 일에는 다 져주는 듯 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국 자기 뜻을 관철시켰다. 남편이 나를 쥐락펴락 하는 줄도 모르고 나는 의기양양하게 뭐든 내 마음대로 하고 살고 있는 줄 알았다.

패티 김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늘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내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다. 나는 의지도 강하고 집념도 강하다. 그런 만큼 자존심도 강하고 고집도 세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수 패티 김으로서 보인 내 이미지도 강할 것이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나 패티 김은 누군가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한 여자다.

패티 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