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10만리>10.아카족 풍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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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아카족은 산꼭대기에서 위락시설도 없이 살아 그런지 성이 일찍개방됐다.보름달이 밝으면 마을 총각.처녀들이 공터에 모여앉아 수건돌리기를 한다.노래를 부르는 동안 총각이 뒤로 돌아다니면서평소 마음에 있던 처녀 뒤에 수건을 떨어뜨린다 .처녀도 총각이마음에 들면 둘이 숲 속으로 사라진다.한참 후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마을로 되돌아온다.그 광경을 보고 총각 김대원의 눈빛이 달라져 다른 대원들이 김대원을 감시하느라 공연히신경이 쓰인다.필자가 짐짓 화제 를 바꾸어 김대원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도한다.
『할아버지 이름 알고 있소?』 『아,뭐더라.』 김대원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겨우 할아버지 이름을 댄다.
『그럼,증조할아버지 이름은?』 『어휴,그런 것을 어떻게 기억해요.생전에 뵌 일도 없는데….』 세계 문명국 가운데 오직 우리 민족밖에는 족보가 없다.있어도 그들의 것은 왕가나 명문 귀족에 국한된다.서양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기껏해야 성경 뒷장에적어놓은 할머니.할아버지의 이름 정도가 족보의 전부다.그들이 우량품종의 가축이나 애완동물의 혈통은 몇대에 걸쳐 빈틈없이 기록하면서도 정작 사람에 대해선 등한시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는 족보를 우리보다 더 철저히 따지는 사람들이 있으니 경탄할 일이다.우리의 족보가 기껏해야 800년을 넘지 못하고 그 이전은 몇대를 걸러 한명씩 기록되어 있어 원뿌리 이어가기도 바쁜데 아카족의 족보는 대개 60대 이상이 순서대로 되어 있다.아마도 그들의 족보는 1,800년 이상의 긴 세월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을 것이다.그들은 문자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대대로 자손들의 머리속에 암기시키는 정말 놀라운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조상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아카족은 가끔 진풍경을 연출한다.길을 가다 우연히 다른 아카족을 만나면 수인사하기도 전에 두사람이 얼굴을 마주보고퍼질러 앉아 한동안 자기의 족보를 열심히 외운다.그리고 친척으로 멀고 가까움을 따지고난 뒤에 격에 맞는 인사 를 차린다.
또 한가지 놀라운 일이 있다.어느 땐가 필자가 어느 아카족 마을에서 80이 다 된 할아버지 한분을 만났는데 그 할아버지는누구에게서 들었는지 몰라도 아카족과 한국인은 형제간이라는 것이다. 그 할아버지의 말은 연대도 맞지 않고 조금은 황당무계하게보여 일소에 부쳐버리고 말았다.하지만 중국에서 왔다는 그 할아버지는 아카족으론 드물게 아는 것이 많았다.
아카족은 다른 종족에 비해 조상을 위하는 정성이 지극한 사람들이다.집집마다 제단을 만들어놓고 매일같이 조상들을 공양한다.
그들의 일생은 오직 조상들을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인다.그래서 가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것이 지나쳐 그들은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잔혹한 일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다.즉 「잘못된 인간」을 죽이는 것이다.그들의 생각에 쌍둥이,6손(손가락이 정상인보다 하나 더 있는 아이)등 이목구비나 손발이 기형적으로 태어난 아이는 조상으로부터 이어온 족보에 끼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아카족은 어느 집에서 쌍둥이나 기형아를 낳았다고 하면금방 동네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온다.그리고 갓난 핏덩이를 숲으로 가져가 흙이나 검불을 덮어 질식시켜 죽여버린다.
***결혼땐 .중방아비' 등장 다음날 탐사팀은 치앙라이로 돌아오는 차속에 호박.풀뿌리.두더지고기등을 싣고 온다.절반은 어거지로 되돌려 주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하는 수없이 차에 싣고 오는 길이었다.
『내버리면 죄 될 것같고,차라리 다른 마을에 주고 갑시다.』그래서 탐사팀은 다른 아카족 마을에 들렀고,마침 결혼식을 끝낸마을 사람들 가운데 얼굴에 숯검정을 바른 중방아비를 보고 또한번 놀랐던 것이다.아카족도 결혼식 같은 좋은 날엔 악귀가 끼어들기 쉬워 이를 쫓는 풍속이라고 했다.필자는 이런 풍속을 볼때마다 과연 이곳이 한국일까,아니면 황금의 삼각지대일까 하는 의문에 휩싸였다.
다음날 탐사팀은 아카족의 장례풍속을 조사하기 위해 미얀마와의국경에 있는 꺼께 마을로 간다.탐사팀은 그곳에서 또한번 기상천외한 장사풍속을 보게 된다.
탐사팀이 마을에 도착하고나서 얼마쯤 기다리고 있는데 장례식이시작되었다.300여명의 마을 사람이 마을 공터에 모여 웅성거린다.규모가 큰 아카족의 장사의식에 내심 놀라고 있던 때 뜻하지않은 돌발사건이 발생했다.
갑자기 주위가 아수라장이 되면서 공터에 모였던 사람들이 달음질치며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대관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필자도 얼떨결에 마을 사람들 뒤를 따라 헐레벌떡 도망친다.도망치면서 뒤돌아 보았더니 다른 탐사 대원들이 언덕위로 도망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고 그 뒤를 쫓아가는 움직이는 물체가 보인다.그 물체는 호랑이였다.아니,물감으로 얼굴과 몸에 호랑이 무늬를 그려넣은 사람호랑이였다.그 사람호랑이가 달려들면 사람들은 급한김에 지붕과 나무 꼭대기 로 올라가 매달리기도 하고,방안으로 들어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기도 한다.
장사때 하필이면 왜 사람 호랑이를 만들어 마을을 벌컥 뒤집어놓는 것일까.한동안 계속되던 호랑이 소동이 잠잠해지고난 후 취재팀은 그 내력을 물었다.마을 노인네의 설명인즉 죽은 사람의 영혼이 호랑이의 안내를 받으며 조상들이 사는 나라 로 간다고 했다.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다른 민족들이 해.달.천둥.
번개.불.이리.흰사슴 등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을 때 아카족 이외에 또 호랑이를 섬겼던 민족은 어디에 살고 있던 누구였을까. 바로 한반도에서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이었다.우리 민족주류중 하나인 예족(濊族)은 당시 유일하게 호랑이를 숭배한 민족이었으며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우리나라성황당에 가보면 아직도 호랑이 그림을 붙여놓고 산신령 으로 모시고,또 호랑이가 등장한 옛날 이야기도 무수히 전해내려오고 있다. ***개고기 요리솜씨 일품 장사가 끝나고 아카족은 탐사팀을 위해 그들의 민속을 보여준다.다리걸고 춤추며 노래하기,신주,성주단지,손목에 실감아주기등 어느것 하나 낯선 것이 없다.오전 취재를 마친 탐사팀은 아카족 마을에서 점심대접까지 받는다.
어느새 준비했는지 마을 아주머니들이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는양푼을 들고 나온다.탐사 대원들도 시장했던 참이라 양푼에 담긴삶은 고기를 보자 군침을 삼킨다.개고기였다.
이 세상에 개를 잡아먹는 민족은 필리핀.홍콩.중국.한국.만주.옛날의 일본,그리고 라후족.아카족등이다.그 가운데서도 아카족의 개고기 음식 문화는 첫손가락에 꼽힐만 하다.아카족은 아예 개고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 해 개를 잡는 기술과 요리법이 아주 발달돼 있다.
아카족은 특히 검정개고기를 선호하며 개 뱃속에 온갖 약초를 넣고 통째로 삶아 보약처럼 먹기도 한다.보신탕 애호가들이 들으면 군침이 넘어갈 이야기다.
글.사진=김병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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