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지는 인천 ‘옐로하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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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인천의 대표적 홍등가인 ‘옐로하우스’가 내년 중 100여 년의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성매매를 없애기 위한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고층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기 때문이다.

인천시는 마지막 남은 집창촌인 남구 숭의동 특정 구역(속칭 옐로하우스)에 대한 도시환경정비사업이 본궤도에 올라 이르면 내년 하반기 중 공사가 시작된다고 4일 밝혔다. 이곳 3만3600㎡에는 25∼30층 아파트 886가구와 오피스텔 84실, 상가 등의 건립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인천의 또 다른 집창촌이었던 학익동 특정 구역(속칭 끽동)은 지난해 완전 폐쇄돼 현재 주상복합아파트가 건축 중에 있다. 인천시는 이달 중 숭의동 특정 구역 정비계획안을 도시건축공동위원회에 상정, 옐로하우스 일대를 도시정비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인천 옐로하우스는 1883년 인천항 개항으로 일본인 거주지가 형성되면서 시작됐다. 1902년 당시 지명이 시키시마마치(敷島町)였던 중구 선화동 신흥시장 자리에 형성된 일본식 유곽이 옐로하우스의 전신이다. 일본인들과 해방 후 진주한 미군, 외항선원 등이 주된 고객이었다. 이곳의 한 주민은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는 1호집, 2호집 등의 번호식 업소 간판도 일제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흥업소 관리 시책의 유산”이라고 전했다.

62년 3월 군사혁명정부는 사회정화사업의 하나로 이 유곽을 바닷가 변두리였던 지금의 장소(숭의동 47의 1)로 이전시켰다. 옐로하우스라는 이름도 이때 새로 지은 가건물들의 외벽을 미군부대에서 얻어온 노란색 페인트로 칠하면서 붙여졌다. 이 후 인근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옮겨오고, 인천항이 붐비면서 90년대 초까지 옐로하우스는 ‘전성기’를 맞는다. 가건물들은 4, 5층짜리 여관으로 증축됐고 한때 종사자가 300여 명에 이르기도 했다. 

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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