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짱, 게임을 즐겨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아시아 홈런 킹' 이승엽(롯데 머린스)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지금 일본 언론들의 밀착 취재 대상이다. 이승엽을 2개월간 지켜본 스포츠닛폰의 야구전문기자 아즈마 노부히토(東信人.34)가 중앙일보에 '내가 본 이승엽'이란 글을 보내 왔다. 아즈마 기자는 1992년부터 야구기자로 활약하며 현재 롯데구단을 맡고 있다.

지난 28일자 스포츠닛폰은 이승엽의 활약을 1면 톱기사로 소개했다. 개막전 첫 타석에서 결승타점을 뽑아낸 한국의 '국민 타자' 이승엽. 그를 새롭게 태어난 지바 롯데 머린스의 상징으로 꼽은 것이다.

이승엽 자신은 어떻게 느끼고 있었을까. "일본 최고의 투수 마쓰자카에게 안타와 타점을 뽑아내 기쁩니다." 이승엽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그러나 측근에 따르면 그는 "삼진을 두 개나 당하다니…"라며 기쁨보다는 불만을 강하게 표시했다고 한다.

*** 초조할수록 타격 폼 무너져

이승엽의 이런 면은 보비 밸런타인 감독도 "프로정신이 느껴진다"고 높게 평가하는 부분. 하지만 나는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승엽이 걱정스럽다.

시범경기 타율 0.222, 7타점, 3홈런. 이승엽이 부진했던 원인은 포크볼처럼 낙차 큰 공을 던지는 일본 투수들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보다도 그의 성격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고지식한 성격이 초조함을 낳았고, 이것이 타격폼을 무너뜨렸다고 보는 것이다.

이승엽은 뛰어난 야구선수일 뿐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본받을 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는 태도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예의바른 모습 등을 보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스프링캠프 때에도 여가시간에 외출하는 일본 선수와는 달리 숙소에 머무르며 비디오 분석에 열중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연구에 열을 올리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승엽은 좀 지나치다. 나는 그의 금욕적인 모습을 볼 때마다 '자기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에게 한국 취재진 중 한명이 농담삼아 "좀 적당히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신중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도 이 말에 찬성이다. 너무 힘이 들어가면 좋은 타격도 할 수 없는 법이다.

*** 삼진 당해도 안타에 웃어야

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삼진에 비관하기보다는 안타를 쳤다는 데 기뻐하자"라고. 처음 상대하는 투수에게 고전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자꾸 마주치다 보면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밸런타인 감독도 "시즌이 끝날 때쯤 이승엽은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가 돼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지 않았던가.

어느 나라에서 뛰었든 한 시즌에 홈런을 56개나 친 선수라면 기량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문제는 몸을 움직이는 마음의 고삐를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