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디지털 국회 발언대

이젠 경제 리더십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제가 어렸을 때는 전쟁이 끝나고 참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길거리엔 거처할 곳 없는 거지아이들이 몰려다니고, 한쪽 눈이 없는 사람, 한쪽 팔이 없는 사람,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들….

하루 세끼를 모두 먹을 수 있는 집이 그리 많지 않았고, 웬만큼 여유있는 집이라 해도 하루 한두끼는 꼭 나물을 듬뿍 넣은 수제비죽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밖에서 혼자 식사하게 되면 꼭 칼국수를 먹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자였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았죠. 그러나 많은 사람이 기아의 고통에서 벗어나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기틀을 마련한 그의 공적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박정희 덕이 아니고 하루 스무시간을 창문 하나 없는 좁은 골방에서 재봉틀과 씨름하며, 젊음과 목숨을 바쳐 일했던 어린 노동자들의 덕이라고 말입니다.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해 잘 살아보자고 온 국민을 한마음으로 뭉치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난 그것을 지도자의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지금은 어떤가요. 신용불량자 400만명, 20대 중 청년실업자 9.1%.

지금의 경제불황이 현 정부의 잘못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은 IMF의 후유증 때문이고, IMF를 몰고 온 것은 김영삼 정권.노태우 정권의 잘못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대중 정권은 섣부른 의사가 맞습니다. 그러나 단군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고까지 법석을 떨었던 사상 초유의 IMF 사태를 맞이해 어느 누군들 제 정신으로 제대로 된 정책을 펼 수 있었겠습니까. 이 정책 저 정책 쓰다 보니, 일부 부작용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신용불량 문제는 그렇게 시작된 부작용 중의 하나지요.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벤처열풍을 일으키며 마침내 우리나라를 세계 제일의 정보기술(IT) 강국으로 우뚝 서게 만들었고, IMF를 조기에 성공적으로 극복한 세계 최초의 국가로 만들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IMF는 김영삼이 만들어낸 것이고, 내 잘못이 아니니까 난 모르겠다"고 남의 탓만 하고 있었다면 환란이 그렇게 이른 시일 내에 극복됐을까요.

그는 "모두가 IMF를 극복하기 위한 고통을 감내하자"고 국민을 열심히 설득하고, 이를 위해 온 국민의 힘을 결집했습니다. 이것이 지도력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신용불량자 400만명, 사오정, 삼팔선에 이태백, 거덜나는 중소기업.

이 모든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탓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문제들을 1년 만에 다 해결하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문제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지도력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盧대통령님, 탄핵이 무효화된다면 국회의원 때려잡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코드 맞는 사람들 뒤치다꺼리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왜 신용불량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지, 왜 실업자는 자꾸 늘어나는지, 왜 중소기업의 가동률은 자꾸 떨어지는지, 왜 투자는 일어나지 않는지, 왜 점점 가게 손님은 줄어들고 있는지, 왜 기업들은 중국으로, 중국으로 나가려고만 하는지에 좀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그런 것을 이겨나가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시하십시오. 국민은 일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개혁, 개혁하지만 마시고 경제, 경제라고도 좀 하십시오. 내가 해결해 주겠다는 의지도 좀 보여주십시오. 국민은 대통령의 리더십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강화식 중앙일보 디지털국회 베스트 논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