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기쁨 <64>위대한 와인의 공통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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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36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꿈의 와인’으로 꼽히는 로마네 콩티 1985년산.

“죽기 전에 꼭 한 번 더 마셔 보고 싶어. 하지만 다시는 마실 수 없을지 몰라.”
남동생이 첫사랑 그리워하듯 잊지 못하던 와인이 있다. ‘로마네 콩티 1985년산’이다. 동생의 꿈이 기적적으로 이뤄지게 됐다. 만화 ‘신의 물방울’의 팬이라는 어떤 사장의 호의로 다시 맛볼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로마네 콩티 1985년산. 평론가 로버트 파커 Jr.가 100점 만점을 매기면서 “이보다 뛰어난 적포도주는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극찬한 보물이다. 그 귀한 와인을 팬 덕분에 마실 수 있게 될 줄이야. 우리 남매의 즐거운 와인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사건이 아닐까 싶다.

초대받은 와인 모임에 도착해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1985년산 로마네 콩티뿐만 아니라 DRC의 몽라셰 2000년산, 부르고뉴의 신이라 불리는 앙리 자이에의 크로 파랑투 1995년산 등 기라성 같은 와인이 준비돼 있었다. ‘신의 물방울’을 연재하면서 수많은 고급 와인을 마셔 본 우리 남매지만 자이에의 1995년산 크로 파랑투와 1985년산 로마네 콩티를 한자리에서 마시기는 처음이었다.

레스토랑의 바를 통째로 빌려 엄숙한 기분으로 맛본 이 세 병의 와인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근사했다. 참석한 이들 모두가 향기를 맡을 때와 입에 머금을 때마다 “굉장해”라고 탄성을 질렀다. 자이에의 와인을 제공한 사람은 모임 주최자의 친구인 모 기업의 사장이다. 그는 ‘자이에가 운명했다’는 말을 듣고 “곧장 백빈티지를 사들였다”고 할 정도로 와인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피서지에 있는 그의 별장에는 무려 만 병이 넘는 와인을 보관한 대형 카브가 있다고 한다.

위대한 와인들을 나란히 시음해 보니 소위 훌륭한 와인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째는 맛이 복잡하다는 것. 로마네 콩티나 몽라셰에는 단순한 과일 맛뿐만 아니라 몇 종류의 꽃과 흙, 허브 향기가 뒤섞여 있다. 가벼운 테이블 와인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복잡성이다. 둘째는 긴 여운이다. 뛰어난 와인은 마신 뒤 혀 위에 복잡한 뒷맛이 길게 남는다. 특히 자이에가 만든 와인은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오래도록 여운이 남아 사람을 압도해 버린다. 셋째는 향기다. 이날 세 병의 와인을 서빙해 준 소믈리에가 “복도에서 이 방에 들어서니 와인 향기가 온 방 안에 감도는군요”라고 놀라워했는데 나 역시 그렇게 느꼈다. 천연 향수라는 표현이 어울릴까. 우아하고 관능적이며 화사한 그 향기는 최고의 와인만이 가진 매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귀한 보물을 연거푸 마신 우리는 거나하게 취해 갈지자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나저나 백만 엔짜리 와인이나 천 엔짜리 와인이나 마시면 취하기는 매한가지다. 이 점은 평등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불평등하다고 해야 할까. 몽롱한 정신으로 잠시 작은 고민에 빠져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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