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보공개법'왜 표류시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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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으며 새 정부가 대표적인 개혁입법으로 꼽아온 정보공개법이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내 일부부처의 반대로 표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우리사회에서 관료의 비밀주의.부처 이기주의가 얼마 나 뿌리깊고 강고한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정보공개법의 정기국회 제출을 반대하고 있는 부처는 재정경제원.건설교통부.농림수산부등 경제부처다.이들의 반대에는 납득할만한근거도 없다.그저 국민의 행태로 보아 정보공개법이 제정되면 혼란이 빚어질 수 있으니 법 제정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성안돼 입법예고까지 마친 정보공개법이 모든 정보를 제한없이 공개하게 돼 있는 것도 아니다.공개 제외 규정이 무려 9개항목이나 돼 정보공개법이 아니라 정보비공개법이 아니냐는 비판마저 받고 있는 형편이다.게다가 정부는 법제정위원 회의 원안과는 달리 공공기관의 비공개 결정에 대한 불복을 정보공개위원회가 아니라 행정심판위원회가 심의하도록 고쳐버려 더욱 더 보수적인 법안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관심있는 국민들과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점들이 차관회의나 국무회의에서 다시 논의돼 개혁입법다운 법안이 마련되길 기대했던 것인데 그런 방향으로의 수정은 커녕 법안 자체를 차관회의에서 유보해버린 것이다.
노태우(盧泰愚)씨의 부정축재사건이 단지 盧씨 개인의 부도덕때문에 빚어진 것은 아니다.행정의 비밀주의와 부처 이기주의가 盧씨의 부정에 단단히 한몫을 했던 것이다.생각해보라.각종 공사나구매과정이 누구나 알 수 있게 공개돼 있었더라면 대통령이라 한들 쉽게 불법적인 결정을 하고 뇌물을 강요할 수 있었겠는가.
버섯이 어두운 곳에서만 자라듯 공직사회의 부정과 비리도 행정의 비밀주의와 불필요한 규제에서 싹튼다.정보공개법의 제정 여부는 새 정부가 뿌리깊은 행정의 비밀주의와 부처 이기주의를 깰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하나의 시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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