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인문·자연과학 담을 넘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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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 대학들이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가로놓였던 높디 높은 담장을 허무는 작업을 시작했다. 양쪽 분야의 장점을 골고루 취해서 새로운 방식으로 학문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통섭’의 커리큘럼이다.

뉴욕 타임스는 27일 뉴욕의 빙햄튼 대학이 이런 움직임의 대표 주자라고 보도했다. 이 대학은 ‘새 인문학 이니셔티브’란 명칭의 프로그램을 도입해 역사·문학·사회학·법학·경영학 등 다양한 전공 분야의 학생들에게 과학의 기본 도구인 통계학과 실험 방법론을 가르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자신의 아이디어와 기존에 발표된 연구 실적 간의 차이를 변별하는 능력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데이비드 슬론 윌슨(생물학) 교수와 레슬리 헤이우드(영문학) 교수가 공동 입안했다. 윌슨 교수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간에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다”면서 “내 전공인 진화 생물학만 해도 양쪽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법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도 자연사를 근거로 수립됐고 양적 분석이 아닌 질적 분석에 더 많이 의존했다는 것이다.

헤이우드 교수는 최근 늑대의 상징성에 대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한 사례를 소개했다. 인문학적 접근 방식이라면 민화나 역사서에 반영된 늑대의 이미지들을 모아 해석하는 데 그쳤겠지만, 이번엔 생물학·생태학 서적까지 파고들었다. 늑대의 이미지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을 조사하는 실험도 실시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학계의 호응은 열렬하다. 룻거스대의 명예교수인 조지 레빈(영문학)은 “그간 인문학·자연과학 종사자들은 상대 분야에 대해 무지했다”면서 “학계의 이분법을 극복해 낸 아이디어가 놀랍다”고 말했다.

신예리 기자

◇통섭=지식의 통합을 의미하는 ‘consilience’란 영어 단어를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번역하며 채택한 말이다. 최 교수는 이 개념을 하버드대 재학 시 스승인 에드워드 윌슨 교수에게서 배웠다. 생물학자인 윌슨 교수는 1998년 출간된 저서 『통섭:지식의 통합』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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