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펀드 수수료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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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우리 펀드 수수료가 더 싸요.”

미국 뮤추얼 펀드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피델리티가 인덱스 펀드의 거인 뱅가드를 향해 전면전을 선포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피델리티는 몇 주 전부터 뱅가드를 겨냥한 전면광고를 실었다.

‘뱅가드 인덱스 펀드 가입자께’ 라는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피델리티는 광고에서 자사 펀드 수수료가 뱅가드보다 무려 58%나 싸다고 강조했다. 투자자가 뱅가드 펀드에 가입한 건 이런 사실을 미처 몰라서였을 거라며 “이제 사실을 알게 됐으니 피델리티 펀드에 투자해 보라”는 권유도 잊지 않았다.

펀드 업계의 맏형이 경쟁사 실명을 언급하며 노골적인 광고를 낸 데에는 피치 못할 속사정이 있다. 1990년대 피델리티의 외형을 키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성장형 펀드의 증가세가 최근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인덱스 펀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덩치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뮤추얼 펀드로 유입된 돈 가운데 3분의 2가 인덱스 펀드(ETF 포함)로 몰렸을 정도다.

피델리티가 옛 영화를 되찾으려면 인덱스 펀드 시장을 공략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2004년부터 자사의 모든 인덱스 펀드 수수료를 확 내린 건 이 때문이다. 덕분에 순자산이 두 배로 늘어 올 4월에는 88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직은 인덱스 펀드 전체 자산 1414조원의 6%밖에 안 된다. 반면 인덱스 펀드를 처음 도입한 뱅가드의 시장 점유율은 44%에 이른다. 올 들어 4월까지 미국 뮤추얼 펀드로 유입된 108조원 가운데 뱅가드에만 41조원이 몰려 업계 1위 실적을 올렸다. 뱅가드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시장에 발 붙이기 어렵게 된 피델리티로선 선제 공격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FT에 따르면 뱅가드는 피델리티의 광고에 대해 “비교 대상이 아닌 걸 비교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피델리티의 인덱스 펀드는 최소 가입액이 1만 달러이고 월 적립액 하한선도 1000달러인 데 비해 뱅가드 인덱스는 최소 투자액이 3000달러에 월 100달러까지 받아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뱅가드 인덱스 펀드의 절반 이상이 피델리티 광고에서 인용한 펀드의 수수료보다 훨씬 낮다고 FT는 전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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