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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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2부 수로부인(水路夫人) 해가(海歌) 13 우변호사는 젖은모래바닥에다 손끝으로 크게 「A」자를 그렸다.격정을 누르는 몸짓 같았다.
『무슨 A인지 아십니까?』 잠잠히 고개만 저었다.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리영씨의 A,어드마이어러의 A….』 「어드마이어러(admirer)」는 「숭배자」「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뜻이다.
파도 한 자락이 와서 A자를 지우고 갔다.아리영도 그 자리에「M」자를 커다랗게 그렸다.
『무슨 「M」인지 맞혀보세요.』 『글쎄요?』 『맥(貊)씨의 M,머린의 M.』 「머린(marine)」은 「해병(海兵)」이다. 『…또 있어요.미내드의 M….』 「미내드(maenad)」는「열광하는 여자」를 뜻한다.
넓은 파도 한 자락이 또 닥쳐와 두 사람의 구두 끝을 적시고물러났다.M자가 천천히 지워져갔다.우변호사는 아리영의 손을 잡아 뒷걸음질치며 소리쳤다.
『A에도 또 있지요.액트의 A!』 그는 아리영의 손을 끌어당겨 「행동」했다.뜨거운 입술이 아리영의 입에 포개졌다.입술을 부드럽게 열어 그의 혀가 들어선다.아리영의 혀는 그의 입안으로쉽사리 끌려들어갔다.
이렇게 진한 키스를 해보기는 생전 처음이다.발밑의 파도가 온통 부풀어 일어 아리영을 「보쌈」해 저 한바다로 끌고 가버리는것이 아닌가 싶었다.
두 다리 사이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이런 해괴한 일도 처음이다.스스로 몸둘 바를 모르는 부끄러움에 휩싸였다.도대체 키스를 하며 욕정을 느낀다는 것은 아리영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쉽사리 불붙지 않는 미끈한 장작처럼 행위중에도 차라리 맨숭맨숭한 육신이 아니었던가….
『사랑해요.』 신음소리가 우변호사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처음 뵈었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는 아리영의 긴 머릿결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어머니의 당부 말씀을 결국 어긴 꼴이 됐지만 우린 애초부터 이렇게 되도록 돼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모래언덕에 앉았다.군청색(群靑色)의 바닷빛이 한없이 고와 슬펐다.
『어머니 말씀은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어기게 되더군요.이상스럽게도 항상 그랬습니다.저는 문제아동이었지요.어머니가 이혼하신것도 절반의 책임은 제게 있었습니다.늘 후회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서여사가 이혼을 했었다니? 고백속에 비쳐진 뜻밖의 사실에 당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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