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하락속 자금 넉넉해 대출금 조기상환땐 수수료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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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제발 대출금을 앞당겨 갚지 마세요.』시중 금리가 떨어지고 자금 사정이 풍부한 상태가 계속되자 금융계에 전에 없던 현상들이 생겨나고 있다.
돈 굴릴 곳이 마땅찮아 고심하던 은행들이 우량기업들에 대출금을 조기상환하지 말것을 「부탁」하는데 이어 아예 계약기간보다 앞당겨 갚는 고객에게 페널티 성격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은행들은 우선 기업들이 신탁대출을 조기상환할 때 수수료를 부과하고 대상을 차차 가계.일반대출로 확대해 나간다는 내부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은행 돈을 못 빌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중소기업에는 딴세상 얘기같이 들리겠지만 담보나 신용도를 따져 돈을 굴려야 할은행 입장에서는 우량고객이 돈을 일찍 갚겠다는 것도 고민이다.
큰 돈이 만기보다 일찍 들어올 경우 자금운용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는데다 대출금리가 점점 낮아지는 추세여서 손실이 적지않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이미 미국등 선진국은 주택자금 대출등을 조기상환할경우 수수료를 내는 제도가 정착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방침」이 과연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고객들의 반발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씨티은행 서울지점이 대출금 조기상환액의 1%를수수료로 부과했다가 민원이 발생하자 공정위(公正委)가 중재에 나서 철회시킨 바 있다.
최근엔 씨티은행의 또 다른 건이 공정위에 계류중이다.국내 은행들도 지난 92년 아예 중도상환이 금지된 대출을 시행했다가 말썽이 나자 은감원(銀監院)의 창구지도를 받고 백지화한 바 있다. 은감원 관계자는 『조기상환에 대한 수수료 부과는 은행법.
신탁업법상 문제가 없다.세계적인 추세임을 감안할때 수수료 수준만 납득할 정도라면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 얘기』라고 말하면서도『다만 고객들이 이를 받아들일만한 여건이 됐는지 검 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정위 관계자도 『조기상환에 대해 수수료를 도입할 때가 됐다』며 『하지만 국민 정서상 반발이 심해 공정위로서도 난처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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