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고전 책갈피]이데올로기에 묻힌 삶과 사랑의 이야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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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호 23면

“최인훈 선생님은 저한테도 ‘교과서에 나오는 사람’이었어요. 『광장』을 처음 발표하신 게 1960년,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었으니까요.”

신경숙 작가는 서울예대 1학년 때 『광장』을 처음 읽었고, ‘최인훈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다고 합니다. “워낙 무게감이 큰 분이라 살아 계시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을 정도였어요.”

한국 문학의 흐름을 바꿔 놓은 문제작, 남과 북을 가른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 『광장』은 젊은 날의 신경숙 작가뿐 아니라 모든 문청(文靑)이 선망했을 겁니다. 누구나 교과서에서 읽었고 ‘이데올로기’라는 주제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굳이 고전이라고 이름 붙일 필요도 없는 작품.

“그런데 이번에 읽으니 또 다른 면이 보였어요.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깊은 고민과 고통,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

주인공이 배 안에서 갈매기 두 마리를 보며 사랑하는 여인과 혈육을 떠올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신 작가는 ‘자기 이상과 사랑을 결부시켜 살아가고 싶은 한 인간’을 진하게 느꼈다고 합니다. “이데올로기 문제와 강하게 결부된 작품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나도 깜짝 놀랐다”면서,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답니다. 그러니 몇 번이고 읽어도 좋겠지요. 『광장』과의 첫 만남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여유로운 겨울방학을 권했습니다. 갓 스무 살, 그 예민한 감수성으로 한 줄기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요.

최인훈 선생은 94년 『화두』라는 ‘묵직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뒤 14년, 일흔둘 선생의 새로운 장편을 언제쯤 볼 수 있을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