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진단>盧씨 비자금 파문-이효성 성균관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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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사건은 전국적인충격파를 몰아오고 있다.짙은 배신감 속에 떠오르는 두가지 의문이 있다.하나는 왜 우리 사회는 『설마』하는 소문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는가.또 하나는 깊은 충격 속에 전국 민이 앓고 있는 집단적 현기증과 박탈감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전문가의 대안(代案)을 들어본다.
유언비어는 중요하지만 모호하게 전해지는 사건을 더 잘 이해하려는 사람들의 자구적인 노력에 의해 생겨난다.우리의 경우 그런유언비어가 흔히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당당한 보도로또 여론으로 구실하면서 정치적으로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게된다.유언비어는 흔히 중요한 정치적 변화에 수반되기도 하고 그자체가 중요한 정치적 변화를 야기하기도 한다.이미 사실로 밝혀졌고 그에 관해 스스로 사과까지 한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거액 비자금설은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유언비어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신뢰할만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정치가 민주적인 과정속에서 공개적으로 행해지고,사정당국의 비리수사와 법집행이 엄정하고,언론자유가 충분히 주어지면 정치적인 유언비어는 잘 발생하지 않거나 발생하더라도 곧 사라지게 된다.그런데 언론이 비교적 자유롭고 민주적이라 는 김영삼(金泳三)문민정권에서도 각종 정치적 유언비어가 끊이지 않는 것은무엇 때문일까.아직도 완전히 가시지 않은 권위주의적 정치행태속에서 정치가 공개적으로 행해지지 않고 정권에 예속된 사정당국의비리수사와 법집행이 엄정하지 않은데 다 과거의 잘못들을 숨기려들기 때문이다.노씨의 4,000억원 비자금설도 한국의 권위주의적인 정치풍토나 부패한 정치문화에서는,그리고 간간이 드러난 관계자들의 증언으로 볼 때 진실일 가능성이 큰 것이었다.그 때문에 유언비어가 확대재생산 되고 그 유언비어가 사실로 밝혀진 지금 국민의 분노가 증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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