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한나라, 무책임 민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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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야당·국민 사이 소통 미숙

한·미 FTA 비준안을 처리하기에 여권은 너무 무기력했다. 지난달 말 광우병 괴담이 민심을 흔들어 놓았을 때 여권은 한동안 뒷짐만 졌다. 민주당이 쇠고기 문제와 한·미 FTA 비준을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단국대 가상준 교수는 “청와대와 대화하고, 야당과 접촉해 설득하고, 국민을 이해시키는 건 여당의 몫”이라며 “하지만 이번에 한나라당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와대·야당·국민 사이에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도 “(FTA 통과를 위해)야당의 대표·원내대표와 술이라도 한잔하며 허심탄회하게 얘기한 적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정부의 소통 미숙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장관들끼리 책임을 떠넘기고, 여당에서 장관 인책론이 나왔다. 여권이 하루 빨리 정치력을 키우지 못하면 18대 국회의 비준도 순탄치 않을 수 있다. 경희대 김민전 교수는 “ 반대세력을 설득하지 못한 채 강행 처리하면 이후 불행한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치적 부담 피하려 막판에 발 빼

통합민주당은 직전 집권당으로서의 마지막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한·미 FTA 처리에 뒤따르는 정치적 부담을 회피했다. FTA는 개방으로 피해를 본 계층의 격렬한 반발을 초래할 사안이다. 비준안을 처리하면 여당뿐 아니라 야당이 짊어져야 할 정치적 부담도 크다.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이 총선 뒤 임시국회까지 열어 가며 17대 국회에서 비준안을 처리하려 했던 이유가 이런 ‘책임 분담’을 노렸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민주당이 FTA에 미온적이었던 이유다. 민주당은 또 6·4 재·보선을 앞두고 ‘야당의 선명성’을 부각하는 게 당 지지율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18대 국회에서 소수 야당으로 전락한 처지라 지금부터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존립 근거가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당초 FTA 처리에 찬성하던 손학규 대표가 최근 말을 바꾼 것도 이런 상황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는 “손 대표가 지시해도 의원들이 따를 분위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고정애·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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