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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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7세기와 8세기에 걸쳐 읊어진 일본 고대가요 『만엽집(萬葉集)』에도 이중으로 읊어진 노래가 많다고 서여사는 말했다.겉으로는 성애(性愛),속으로는 정치 음모나 체제 비판을 노래 형식에담아 겹으로 읊은 노래들이라는 것이다.
백제는 660년에,고구려는 668년에 멸망했다.이때 수많은 상류 지식층은 기술집단을 거느리고 왜섬으로 쏟아져 들어갔다.당시의 왜는 「백제분국」이었다.왜가 「일본」이라고 나라 이름을 고친 것은 그 직후인 670년이다.그리고 672년 엔 일본 땅안의 신라.가야.고구려 세력이 연합해 쿠데타를 일으켜 백제 정권을 무너뜨린다.동족끼리의 패권 다툼이었다.이것을 「임신(壬申)의 난」이라 부른다.
4,516수의 『만엽집』 노래들은 주로 이 정권 교체 전후에읊어졌다.신라 향가처럼 한자를 빌려 당시의 우리말을 표기한 노래들이다.쿠데타 모의(謀議)나 암살 계획등을 섹스의 노래처럼 포장(包裝)함으로써 반대파에 들키지 않도록 한 것인가.혹시 들켰다 하더라도 「잡노래일 뿐」이라며 핑계대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경치의 노래지만 속으로는 아주 노골적인성행위를 읊은 작품도 더러 있다.이 또한 단순한 섹스의 노래가아니라 성행위에 빗대 포악(暴惡)한 정치를 비판한 작품인 경우가 태반이라고 서여사는 주장한다.
「노인헌화가」도 이런 유형에 속하는 노래일는지 모른다고 그녀는 지적했다.
이 노래가 읊어진 것은 신라 제33대 성덕왕(聖德王.702~737년 재위)때다.『만엽집』에 수록된 노래 가운데 가장 늦게지어진 것이 759년작이므로 「노인헌화가」와 일본 고대가요가 읊어진 시기는 거의 일치한다.
「노인헌화가」의 작자인 노인은 정권을 등지고 은둔하는 지식인.무술인(武術人)이었을까.겉으로는 『나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으신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고위층 마누라와 섹스하고 가겠다』고 겹으로 읊은 데 정권 비판적인 냉소주의(冷笑主義)를 느끼게 된다.
백제 말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정읍사(井邑詞)」도 이중가의 흔적이 짙다는 것이 서여사의 견해다.
『정길례여사님의 「정읍사」작업은 잘 진행돼 갑니까?』 아리영은 넌지시 물었다.그녀가 그 후 어떻게 지내는지 좀이 쑤셨으나직접 전화해볼 처지는 못됐다.
『참,그 일로 연락하려던 참이었어요.』 서여사는 생각난 듯이수화기를 들었다.
『…편찮으셨다니 어디가요?…아니 그게 정말이에요?…조섭 잘 하세요.언제 한번 뵈러가리다.그럼….』 전화를 끊고 서여사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유산(流産)을 해 누워계시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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