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서 일하고 싶은 한국 학생들 폭탄 터지는 곳도 갈 각오 됐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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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가 원하는 건 솔직함이다. 자신을 지나치게 포장하려 하지 말라.”

스티븐 앨런(56·사진左) 유니세프 인사국장의 말이다. 외교통상부와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이 주최하고 중앙일보가 후원한 국제기구 진출 설명회 참석을 위해 방한한 그를 만나 ‘유엔 입사’의 바늘구멍을 뚫는 데 필요한 비결을 물어봤다. 유엔본부의 존 에릭슨 인사국장(51·右)도 자리를 함께했다.

영국 출신의 앨런 국장은 1975년 유엔개발계획에 입사한 뒤 유니세프에 합류했고, 99년 코소보 사태 등의 분쟁 현장을 누볐다. 스웨덴 출신의 에릭슨 국장도 분쟁 지역이나 도움이 필요한 세계 각지를 2~3년마다 옮겨다니며 근무했다.

-국제기구 진출 설명회에서 많은 한국인 지원자를 만났는데 그들의 특징은.

“거의 모든 지원자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말해 놀랐다. 하지만 스페인어나 아랍어와 같은 제 2외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학생은 드물었다. 열정과 학력은 우수하지만 필수 요건인 현장 경험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에릭슨)

“면접에서 ‘당신의 단점을 말해달라’라고 하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경우를 많이 봤다. ‘난 너무 열심히 일하는 게 흠이다’라든지 ‘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지나치게 많이 한다’라는 식의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솔직함이다.”(앨런)

-그럼 어떤 답변이 효과적인가.

“구체적 사례를 들어 자신의 실패담을 들려주는 거다.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가 핵심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항상 성공적일 수는 없다. 우리는 지원자들이 더욱 발전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그것이 유엔에 도움이 될 발전인지를 듣고 싶다.”(앨런)

“동의한다. 구체적 사례가 중요하다는 점을 봐서도 현장 경험을 쌓는 것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셈이다. 2~3년의 현장 경험은 기본이다.”(에릭슨)

-뽑히려면 어떤 능력이 중요한가.

“중요한 건 우리가 팀워크 및 인류의 보편적 가치 추구에 무게를 둔다는 거다. 편하게 살고 싶다면 유엔은 당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다. 전기도, 수도시설도 없는, 폭탄이 떨어지는 곳에서 지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에릭슨)

“정말로 역사의 일부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각오가 중요하다. 환상도 깨야 한다. 나도 수단에서 트럭 모는 일로 경력을 시작했다. 내일 당장 케냐로 발령이 날 수도 있고, 폭탄이 날아다니는 곳으로 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덜 받는 능력도 중요하다. 끈기도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지원자가 ‘세 번 시험을 봤는데 모두 떨어져서 낙담했다’라고 얘기를 하던데 세 번 가지고 뭘 그러나. 다섯 번, 열 번 지원하는 사람도 많다.”(앨런)

-한국 정부에 대한 조언이 있다면.

“외교통상부가 선발하는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의 숫자를 늘려달라는 것이다. 한국 JPO들은 유엔 시스템 안에서 평가가 매우 좋아서 정식 채용 제의도 많이 받는다. 유엔으로서도 이런 JPO들을 많이 받는 것이 효율적인 채용 시스템이다.”(앨런)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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