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태풍 재계 초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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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재계가 초비상이다.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의 비자금 소문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돈의 출처」가 본격적인 의혹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주요 기업마다 휴일인 22일 그룹본부 관계자들이 출근했으며 23일에도 내부회의를 열고 사태 추이를 지켜보는등 긴장하고 있다.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재계는 『설마』하는 분위기였으나 막상 사실이 확인 되자 『비켜갈 줄 알았던 태풍을 정면으로 맞게된 느낌』이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의 고민은 크게 세가지.
첫째는 이미지 실추다.
비자금의 상당 부분이 기업 호주머니에서 나간 돈일 수밖에 없어 해당기업으로 밝혀지면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둘째는 조사.처벌등으로 재계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는 대목이다. 일해재단등 청와대와 직접 관련된 금전 헌납의 경우 과거엔도덕적 문제로 끝나고 법적 제재를 받은 적이 거의 없었으나 이번엔 당국에서 엄정한 조사.제재 방침을 밝혀 상당한 홍역을 치를 것이 예상되기 때문.
경우에 따라서는 총수나 간판경영인들이 소환.조사받거나 형사처벌 받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긴장하고 있다.
셋째는 향후 기업활동의 위축.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비자금문제가 불거져 나와 영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데다 금융권이 몸을 사리면서 자금조달도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이 향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맑은 기업풍토」를 조성하는 데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고 있다.
한편 개별기업들은 아직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상태가 아니어서일단 관망세를 보이며 무관함을 애써 강조하려는 모습이다.
노 전대통령과 인척 특수관계인 S.D사,최근 활발한 사업확장을 하고 있는 H사,6공때 대형프로젝트를 많이 따낸 C.D사등도 세간의 구설수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현대.삼성.LG.대우등 큰 그룹들의 경우 『6공과는 관계가 나빴다』『6공때 따낸 사업이 없다』는등 이구동성으로 결백을 강조하고 있는데 한 관계자는 『일종의 「구색갖추기」식으로 연루될가능성이 문제』라며 불안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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