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시작부터 삐걱거린 대우조선해양 매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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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자격 문제로 논란이 됐던 미국계 투자은행 골드먼삭스가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자문사에서 결국 탈락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우선협상대상자인 골드먼삭스의 선정을 취소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라 매각 자문사의 교체가 불가피해졌고 그만큼 대우조선의 매각 일정도 늦어지게 됐다. 대우조선과 같은 국제적 대기업을 매각하면서 자문사 선정부터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매각 일정이 늦어지는 것도 문제지만 산은의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가 더 큰 문제다.

골드먼삭스가 중도 탈락한 것은 이 회사가 중국 조선업체에 투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산은은 논란이 빚어지자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하면 (자문사가) 일체의 책임을 진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새로 넣을 것을 요청했다. 골드먼삭스 측은 “국제 관례에 어긋나는 조건을 명문화할 수 없다”며 요청을 거부했다. 그 결과 골드먼삭스는 자문사에서 탈락했고, 산은은 매각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문제는 산은이 논란의 소지가 큰 이해상충 해소 조건에 대해 처음 자문사를 선정했을 때는 거론하지 않다가 국내에서 논란이 불거진 이후에야 계약서에 추가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런 조건이라면 외국계 자문사는 아예 응찰조차 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해외 조선업체에 어떤 식으로든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조건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것이고, 결국은 외국계를 배제하고 국내 업체만 자문사로 선정하겠다는 의도로 비치기 십상이다. 당연히 외국계를 차별한다는 불만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시장개방의 의미가 무색해지고 한국의 기업 인수합병(M&A) 절차의 투명성과 신인도는 손상을 입게 된다.

대우조선 매각이 초장부터 삐걱거림에 따라 앞으로 줄줄이 예정된 하이닉스와 현대건설 등 굵직한 대기업의 매각 작업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산은은 이제라도 매각 절차와 조건을 투명하게 제시해 더 이상의 차질을 막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