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호의 컴퓨터 이야기] 사람이 더 잘하는 것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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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39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나오는 보물이 감춰진 동굴에서 “열려라 참깨” 하면 열리는 동굴의 문을 컴퓨터로 현실화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주인의 음성을 인식하고 문을 열어 주는 컴퓨터 기술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주인이 감기라도 걸려 목이 쉬거나 목소리가 변하면 영원히 문이 안 열릴지도 모른다.

컴퓨터 과학자들은 컴퓨터를 인간과 같도록, 아니 더 뛰어나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밤새워 연구에 몰두한다. 그런데 미국의 루이스 본 안 교수는 사람이 컴퓨터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연구했다. 그는 이를 “인간 컴퓨터학(Human Computation)”이라고 부르며 박사학위 논문을 썼고 덕분에 유명한 카네기멜런대의 교수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도대체 왜 이 문제에 주목했을까?

그가 처음에 주목한 것은 악성 프로그램이 정상적인 웹사이트에 자동적으로 등록한 뒤 등록된 계정을 나쁜 곳에 쓰는 것이었다. 포털 같은 웹사이트에서는 어떻게 하면 사람이 등록한 것과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등록하는 것을 구별하느냐가 시급한 문제였다. 그는 CAPTCHA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컴퓨터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등록하는 것을 막았다.

컴퓨터보다 뛰어난 사람의 인식능력을 이용해 자동등록을 방지하는 CAPTCHA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은 회원으로 등록할 때 비뚤어진 글자를 보여 주고 사람에게 해석할 것을 요구했다. 컴퓨터는 비뚤어진 글자를 인식하기 어렵지만 사람은 뒤집어 진 글자라도 금방 인식할 수 있는 속성을 이용한 것이다. 안 교수는 http://www.captcha.net/에서 누구나 이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가 만든 두 번째 프로그램은 ESP (www.espgame.org/)라는 게임 프로그램이다. CAPTCHA와 비슷하지만 이를 게임으로 만들어 ‘재미’라는 요소를 가미했다. 즉 온라인상으로 전혀 모르는 두 사람에게 같은 이미지를 보여 주고 생각나는 단어를 치도록 해 단어가 일치하면 점수를 얻고 다음 사진으로 넘어간다. 이전에 다른 사람이 입력했던 단어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려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게임이 재미있어 하루에 몇 시간이나 즐기는 사람이 많이 나타났다. 안 교수는 이렇게 모은 이미지를 해석한 단어를 모아 이미지 검색의 색인(index)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네이버나 구글 등 포털에서 이미지를 아직도 제대로 찾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원래 안 교수는 윈도 운영체제에 있는 Solitaire라는 카드 게임으로 전 세계적으로 9조 맨아워(man-hour·한 사람이 1시간 일하는 분량)를 낭비하고 있는 점에 착안해 게임도 하면서 사람에게 유용한 일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 톰 소여가 친구들에게 페인트 칠하는 것을 재미있는 일로 여기도록 해 친구들이 대신 일을 하도록 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

사실 따지고 보면 컴퓨터보다 인간이 잘하는 영역이 많다. 우리 인간에게는 상상력·창의력·음악·미술·상식·사랑·배려·감정·꿈·영적 능력 등 다양한 능력이 있다. 컴퓨터 학자들은 컴퓨터가 인간의 모든 일을 대신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간이 각자의 영역에서 잘할 수 있는 일을 서로 협력해 시너지를 내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연구 방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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