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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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결국 이 놈이 말하는 것은 성직자들이 말하는 천국 운운하는 것과 하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그 진부한 얘기로 어떻게 나의권태를 고쳐주겠다는 건가.그런 역겨운 종교는 이미 국민학교 때때려쳤는데….
그런데 나는 왜 이 놈의 말에 효과적으로 파고들지 못했을까.
그 빤한 얘기를….둘은 아무 말 없이 한동안 달렸다.민우는 한참 뒤로 처졌다.상운은 생각하면 할수록 괜히 심통이 나 몸에 부착된 플로팅 가스를 한껏 부풀려 몸을 가볍게 하 고 힘껏 달렸다.아마 이 속도로 달리면 올림픽 세계신기록도 문제없을 것이다.상운은 한동안 달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내가 왜 이렇게 평정을 잃는 걸까.뭐 그렇게 대수로운 얘기라고….보통 때 같으면 잘 알겠다고 겉으로는 수 긍을 하고 속으로 음모를 계속 진행하지 않았던가.무엇 때문에 이 놈만 만나면 흔들리는 걸까.그래,아마도 내 안에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리라.그래서 나도 모르게 달리자는 제의를 했을 것이다.그렇다면지금 필요한 것은 빨리 평 정을 되찾고 그 놈을 넘어설 수 있는 비책을 발견하는 것이다.그렇게 생각하니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고,느긋해지는 것이 느껴졌다.마음이 가라앉는다는 것은 지금 내 생각이 옳음을 입증한다.아직 민우와의 만남에서 음모를 진행시킬 실마리를 잡지 못했다.실마리는 그 놈의 안에서 잡아야 한다.그렇다면….그 놈의 얘기를 좀 더 들어야 한다.그래서 그 놈이 집착을 하고,욕심을 부리고,의심을 품고 있는 끈을 잡아채그 놈 스스로 나락에 떨어지게 만들어야 한다.희경을 포함한 121명의 제물들처럼….
상운은 속도를 늦추고 길가의 바위에 걸터앉아 민우를 기다렸다.민우는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이 놈이 혹시 달리기를 포기하고 그냥 가버린 게 아닐까.은근히 불안해할 때 저 멀리서 조그마한 점으로 민우가 나타났다.상운은 입가에 미소를 연습하면서 민우를 기다렸다.한껏 여유롭고 풍요롭고 차분하게 민우를 맞아야한다.그래야 그 놈이 긴장의 끈을 늦춰 마음을 열고 자기의 빈틈을 보여줄 것이다.민우는 상운이 앉은 바위 밑으로 털썩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상운은 그에게 물을 권했다.조금전 보디가드가 차를 몰고 지나가면서 던져준 수통이다.
『언제 물까지 준비하셨습니까?』 민우가 헐떡거리면서 물었다.
『조깅하는 사람이 수통 정도는 준비해야죠.많이 힘드시죠.』 『아니 괜찮습니다.아무래도 이 내기는 제가 이기기 힘들 것 같군요.그래도 끝까지 한 번 해보죠.달리다 보니 여러가지로 건강한 쾌감이 드는군요.』 민우는 다시 벌떡 일어나 달리기 채비를했다. 『건강한 쾌감이요?』 상운은 다시 놀라며 물었다.그러나무언가 「아차!」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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