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불변의 1집 반, 이세돌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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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결승 3번기 3국>
○·박영훈 9단(1승1패) ●·이세돌 9단(1승1패)

제21보(232~263)=종국이 다가오면서 사방이 부산해졌다. 목진석 9단 등 호화 해설진들이 인터넷을 통해 ‘이세돌 우승’을 선언했다. 사진기자들이 대국장 앞에 진을 쳤고 시상식을 준비하는 진행요원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하지만 이 시각에도 박영훈 9단은 운명을 되돌리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피로감이 극에 달하고 있었으나 마지막 30초 초읽기가 종소리처럼 귓전을 두들기면 그는 퍼뜩 깨어나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켜세우곤 했다. 승부란 어느 시점이 되면 정해진 코스가 나타나는 법이고 그 코스가 불변이라는 것을 수없이 체득했으면서도….

흑▲로 따낸 장면에서 패가 두 군데니까 일단 하나(132)를 이어야 한다. 133 따낼 때 이 패를 이길 수 있다면 승부는 반집이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이젠 팻감도 다 떨어졌다. 246으로 물러서며 박영훈은 고개를 꺾었다. 이 후퇴로 인해 모든 게 일목요연해졌다. 이 쪽의 패와 253 쪽의 패가 똑같은 모양이어서 한쪽씩 나눠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끝내기(163)도 흑 차지. 이세돌 9단은 이 코스를 정확히 읽고 물러서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니 그의 계산력도 이미 신통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느낄 수 있다.

263에서 끝나 계가한다. 반면 8집. 덤을 제하고 1집 반. 그렇다. 이 차이였다. 솜털처럼 작은 차이였지만 끝끝내 좁혀지지 않았던 1집 반. 승자의 영광과 패배의 아픔을 갈라놓은 1집 반. 안경 너머 ‘순둥이’ 박영훈의 두 눈에서 희미하게 물기가 스쳐 지나간다(236·239·242·245=패때림, 252=△, 256=▲, 257=◎).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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