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손발 안맞는 日망언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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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2일 오전11시 공노명(孔魯明)외무부 장관이 야마시타 신타로(山下新太郎) 주한 일본대사를 집무실로 불렀다.
지난 5일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일본총리가 『한일합방조약은 합법적으로 체결된 것』이라고 말한데 대한 유감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망언(妄言)」이 나온지 꼭 1주일만이다.
당초 외무부는 이런 발언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뒤늦게 사실을확인한 외무부는 지난 10일 짤막한 당국자 논평이란걸 내놓았다.공교롭게도 북한이 강한 어조로 일본총리 발언에 항의한 다음날이었다. 「한일합방조약은 강압적으로 체결됐으며 따라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입장을 재삼 분명히 하는 바다.」 언제부터 우리 정부가 이토록 성숙해졌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점잖다.흔해빠진 「유감」이란 말 한마디 없다.그러나 언론이 들끓고 국회의 원들이 고성을 질러대자 뒤늦게 대책을 숙의한다,일본대사를 불러들인다 법석을 피우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욕 먹을 줄 알면서도 한-일 관계의 장래를 위해 일단 정부로서는 냉정한 자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외무부 당국자의 해명이다.『국민감정을 의식해 정부마저 초강경으로 나가면 양국관계가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깊은 뜻」을 이해해달라고 호소한다.
지난 9일자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는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회견 내용이 1면 머릿기사로 실렸다.회견에서 김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통상적인 외교적 발언 수위를 넘어선 강경한 언사(言辭)를 직설적으로 쏟아냈다.
『일본지도자들의 반성이 필요한데 자극적 「망언」이 자꾸 쏟아져 나와 양국의 미래지향을 방해한다…』『일본이 한반도 통일에 장애가 되고 분단을 고착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외무부의 해명대로라면 김대통령의 발언은 한-일관계의 미래지 향적 장래를 고려하지 않고,국민감정만을 염두에 둔 냉정치 못한 발언이라는 얘기가 된다.
대통령의 발언과 외교주무부처인 외무부의 대응을 단순비교하기는어렵겠지만 뭔가 손발이 안맞는 느낌이다.북-일 수교협상 재개를앞두고 나타나고 있는 통치권자와 정부당국간 불균형.부조화를 바라보면서 한-일관계의 난기류를 걱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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