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기 회복 기대 더 멀어져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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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 경제가 계속 가라앉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3.1%에 그쳤지만, 4분기 성장률은 3.9%로 최근 2년래 가장 높았기 때문에 경기가 바닥을 쳤다고 생각해 볼 만했다. 그러나 어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 조사에 따르면 현재 체감경기는 오히려 나빠졌다. 현재 생활형편이 6개월 전보다 나쁘다는 응답이 지난해 4분기보다 많아졌다. 앞으로 6개월간의 생활형편이 나아질 것이라고 보는 답변도 더 줄었다. 주위를 봐도 몇몇 대기업의 근로자와 호황을 누리는 일부 업종 종사자들을 제외하면 주머니 사정이 나아졌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체감경기를 잘 보여주는 택시기사들의 표정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이 와중에도 수도권의 한미은행 지점들은 수십만명의 인파로 북적거렸다. 서울 용산 시티파크 주상복합아파트에 청약하려는 사람들이 대거 몰린 때문이다. 일인당 3천만원인 청약증거금이 6조원 이상 접수된 것으로 추산되었다니 20만명 이상이 시티파크에 청약했다는 얘기다.

국민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가운데 엄청난 규모의 부동자금이 이리저리 떠돌고 있는 모습이 우리 경제의 현주소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부진했던 것은 수출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소비와 투자가 극도로 침체되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혼란한 정국 등을 이유로 투자를 꺼리고 있다. 여유가 있는 국민도 돈을 쌓아두거나 재테크에 활용할 뿐 좀처럼 쓰려 하지 않는다. 시중의 막대한 부동자금이 소비와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제심리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소비와 투자가 되살아나길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총선과 탄핵정국의 회오리에 휩싸여 있다. 멍드는 것은 국민의 하루하루 생활이다. 정부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 총선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총선 이후도 혼란이 쉽게 진정될 기미는 없다. 한국 경제는 지금 기로(岐路)에 놓여 있다. 한발씩 물러나 사회의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