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출 현장일기] 대장금 마지막 촬영날 대본에 얼굴 묻고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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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장금 54회(최종회) 대본입니다. 위로 53명이나 되는 형이 있지만 막내인 제가 가장 인기 폭발이었어요. 평소보다 50부나 많은 200여부를 찍었는데도 너도나도 집어가 금방 동났지요. 지난 13일 토요일 밤만 해도 저는 갓난 아기에 불과했어요. 초고를 완성하신 어머니(김영현 작가)께서 e-메일로 저를 아버지(이병훈 PD)에게 보냈지요. 아버지는 제 몸에다 선을 직직 그어대고, 이상한 그림도 그리고, 암호 같은 문자도 막 썼어요. 그런 걸 콘티 작업이라고 한다나요. 그 작업은 일요일 오전 6시에야 끝났어요. 그리고 네 시간 뒤 저는 예쁜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선을 보였죠. 바로 대본 연습이었죠. 스튜디오 녹화까지 끝내니 월요일 점심 때였어요.

야외촬영을 나가서도 장난꾸러기 아버지는 어찌나 저를 괴롭히는지요. 아버지는 카메라 바로 옆에서 저를 흔들고, 연기자들에게 손짓발짓 해가며 연출을 하세요. 다른 드라마 PD들이 대개 모니터를 보며 연출하는 방식과는 다르죠. 아버지가 저를 들고 흔들면 가끔 카메라에 잡히기도 해요. 그런데 '못된'(?) 조연출은 컴퓨터그래픽까지 동원해 저를 지워내지요. 장금이 이영애 누나는 손에서 절 놓지 않아요. 누나는 천사표 얼굴과 달리 연기에 들어가면 어찌나 독종인지요. 자기 대사 나오는 곳마다 한 귀퉁이를 주욱 찢어서 표시를 해놓고요, 쉴 새 없이 그 부분을 펼쳤다 접었다 하거든요. 장금이 대사가 좀 많나요. 그렇게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하니 허리가 남아나지 않아요.

마지막 대본의 기분은 묘해요. 촬영장에서는 다들 화기애애한데, 한편에서는 눈물 흘리는 사람도 많거든요. 제주에서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다들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한 뒤 왜 뒤돌아서서 제 얼굴에 대고 눈물을 닦을까요. 간간이 콧물도 묻어나오고요. 지저분해서 싫은데…. 아무튼 전 잘 모르겠어요. 웃다가 우는 것이 무슨 뜻인지. 사람들은 원체 복잡한 동물이라서요.

최병길 MBC '대장금' 조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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