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세계바둑오픈' "덤이 안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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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세계바둑오픈 결승전 제2국
[제6보 (102~134)]
白.趙治勳 9단 黑.朴永訓 5단

박영훈의 순한 눈빛이 절박하게 타오르고 있다. 세어보고 또 세어보지만 몇집인가 부족하다. 중앙에서 뭔가 집이 붙지 않으면 그대로 지는 상황이다. 초읽기에 몰린 趙9단의 머리도 헝클어졌다. 햇빛에 타 포도주처럼 검붉은 피부에선 투혼이 일렁인다. 쌍방 허리를 꺾고 바둑판을 노려보고 있다. 두사람의 머리가 바둑판 중앙에서 맞닿아 있다.

중앙을 어떻게 하느냐. 검토실은 이 마지막 승부를 놓고 설왕설래했지만 趙9단은 120,122와 124,126으로 아주 간단히 경계를 짓는다. 검토실의 프로들은 "이게 쉬워 보이지만 막상 실전에 앉으면 보통 어려운 대목이 아니다"고 토로한다.

백이 마지막 큰 곳인 하변을 132로 넘어가자 이젠 계산이 쉬워졌다.

-몇집 차이인가.

"반면으론 흑이 두세집쯤 이길까. 덤이 안 나온다."

중앙에 아직 희미한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투로 보아 승부는 이미 기울었다. 좌하에는 '참고도1'의 끝내기도 남아 있다. 흑이 '참고도2'의 흑1로 버티면 백2, 4로 걸려든다. 잡고도 되레 잡히는 유명한 후절수.

검토실의 한쪽에서 이런 변화로 시간을 보내며 종국을 기다린다. 져도 1대 1이니까 박영훈의 친구들은 그리 초조한 얼굴이 아니다. 좋은 바둑이었는데 '실리파' 박영훈이 이상하게도 중앙에 집착하면서 승부의 흐름이 꼬였다. 그런 것도 다 운명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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