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마지막 쌀 배를 보내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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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에 제공할 쌀을 실은 마지막 배가 7일 출항했다.식량난으로 시달리는 동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완료됐다는 측면에서 응당 흐뭇하게 여겨야 할 일이다.그러나 그런 흐뭇함이나 성취감 보다 씁쓸한 심정이 앞서는 것을 감출 수 없다.
막대한 양의 쌀을 무상으로 제공하면 북한도 상응하는 태도를 보여 관계개선의 계기가 되리라던 기대가 스러진 탓이다.오히려 불신의 분위기가 증폭되고 쌀제공 전보다 분위기가 더 나빠져 새로운 긴장의 불씨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데는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북한의 잘못된행동을 가장 큰 책임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쌀을 싣고 들어간 우리 선박에 인공기(人共旗)를 달도록 하고,선원을 억류하는등 고마움을 표하기는커녕 무례하게 행동해 우리 국민감정을 크게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처럼 행동한 배경을 두고 쌀제공 교섭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국내의 정치적 효과에 급급한 나머지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하고 졸속으로 처리한 탓이라는 비판도 있었다.그러나 근본적인원인은 북한의 2중적인 대남(對南)정책에서 찾아 야 할 것이다. 쌀 제공을 위한 남북한의 교섭과정을 전후해 나타난 징후들은북한이 쌀은 쌀대로 받아 실리를 챙기면서,우리를 빼돌리고 일본이나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지금까지 북한과 관 련해 이뤄졌던 한.미.일(韓.美.日)의 정치적 공조(共助)체제를 경제적인공조로도 확대하는 방법을 검토해 볼 일이다.
15만의 쌀제공이 헛되기만 한 것은 아니다.우리가 호의를 보인다고 북한도 똑같은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교훈을 확인한 것자체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따라서 그동안 나타났던 미흡한 점들을 보완해 앞으로의 대북교섭에서 같은 잘못이 되 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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