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즐길 때 번거로운 예절 따지지 맙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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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혜우 스님이 전남 담양군 죽향문화 체험 마을에서 차 재배 농민들에게 가마솥에서 찻잎을 덖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차는 쉬운 겁니다. 차 우리기는 컵라면 끓이기보다 쉽고, 차 마시기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 간단합니다.”

20년 넘게 차를 연구해온 혜우(慧宇·사진) 스님의 지론이다. 전남 순천시 황전면 ‘전통 덖음차 제다(製茶)교육원’에서 농민들에게 차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다승(茶僧)이다.

“다도요? 차를 일상에서 즐기려면 어떤 차를 몇 도의 물에 얼마나 우려 마시는 것이 좋은지만 알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 밖의 지식과 기술, 정신세계는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입니다. 차는 정성으로 마시는 것이지, 머리로 마시는 게 아닙니다.”

차를 너무 쉽게 보는 게 아닌가 싶지만, 사실 그는 차맛을 꼼꼼하게 분석하기로 유명하다. 2년 간 전국을 돌며 맛이 좋다고 소문난 물로 차를 우려내 맛을 비교했을 정도다. 검사소에 보내 성분까지 분석했다. 그 결과를 정리한 것이 지난해 봄에 출간한 『찻물 기행』이다.

이미 2006년 “마음의 문을 열고 차의 세계에 다가서 보자”며 『茶飯事(다반사)』란 책을 냈다. 이번에는 쉽고 친근한 차의 세계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알고 보면 쉬운 차』(도서출판 이른 아침)라는 책을 새로 내놨다.

이 책에 대해 “차에 쉽게 다가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펴낸 것”이라며 “일상에서 차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상식만 담았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차를 마시려면 다도·다례·다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분도 있지만 이는 전문가들에게 맡겨둘 일”이라며 “건강을 생각해 홀로 차를 마시고, 일상생활의 활력을 위해 가족과 더불어 찻잔을 기울이는 데 번거로운 도나 예가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차 기술자’를 자처한 그는 차 만들기를 배우러온 사람들에게 “차 기술자가 되어야지, 차 선생이 되려고 들지 말라”고 주문한다고 했다.

혜우 스님은 속세에서 여행 담당 기자를 하다 출가했다. 수행 중 차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내 손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겠다”라고 마음 먹었다. 오랫동안 차 만들기를 연구한 그는 2005년 3월 섬진강가 폐교에 제다교육원을 열었다. 농민들에게 차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일반인에겐 제다 체험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담양군과 손잡고, 대나무 숲 속에서 재배한 차잎으로 죽로차 만드는 법을 농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요즘 그는 말차(抹茶: 가루녹차) 복원에 힘쓰고 있다. 말차는 차 잎이 보리알만 할 때 따 말린 뒤 빻은 고급 차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현재 유통되는 말차의 90% 이상이 일본산이다.

그는 “차 만드는 사람으로서 죄송하고 자존심이 상해 말차 연구를 시작했다”며 “3년째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문헌 속에 나타난 말차 맛을 역추적하며 제다법을 재현해 나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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