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대통령 시험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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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시험쳐서 뽑을 수는 없나.』정치인들의자질을 놓고 한탄하다 보면 이런 말들을 농담삼아 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정치판 가까이에서 정치인들의 작태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문득 문득 들 때가 없지 않다.
요즘 시중에서는 대권 후보론들이 한창이다.2년도 더 남은 대통령 선거의 후보들이 6개월 남짓 밖에 남지 않은 국회의원 선거 후보들보다 더 떠들썩하게 거론되는 것은 가부장적(家父長的)권력중심의 우리 정치풍토 때문일 것이다.어떤 대통 령 후보를 갖느냐가 내년 총선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는 판이다. 지금 대통령 후보감으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10여명도 넘는듯 하다.민자당에선 김윤환(金潤煥)대표,최형우(崔炯佑)의원,이한동(李漢東)의원이 거론되고 김덕룡(金德龍)의원이 젊은 세대의대표주자로 꼽힌다.이홍구(李洪九)총리와 같은 새로 운 인물이 경륜을 가진 인물로 떠오르는가 하면 대통령이 워낙 거세게 세대교체를 주장하니 이인제(李仁濟)경기지사를 후보감으로 넣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이기택(李基澤)의원은 언젠가 대권도전 의사를 표명한바 있었고,이부영(李富榮)의원이 젊은 세대의 인기를 업고 거론되기도 한다.
제도권 밖에서는 이회창(李會昌)前국무총리가 가장 인기가 높다느니,노재봉(盧在鳳)前총리가 나설 것이라느니,서울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는 조순(趙淳)시장이 새로운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등 온갖 소리가 많다.
그런데 이미 대권 도전 의사가 확실시되는 국민회의의 김대중(金大中)총재와 자민련의 김종필(金鍾泌)총재를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민자당의 경우는 대통령이 대권이니,후계자니 하는 사람은 손해볼 것이라고 경고까지 한 탓인지 먼저 나서다 정맞을 짓 하지 않겠다는 태도들이다.여권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야당이나 제도권 밖에서도 모두 몸을 사린다.누군가가 후보감으로 유 력한 한 인사에게 가서 한번 나서보라고 권유했더니 펄쩍 뛰더라는 것이다.
누구를 망치려느냐는 것이다.그런데 정작 그 인사는 대통령에 전혀 뜻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다만 잡스러운 정치에 휘말리기는 싫고 밥상을 차려온다면 숟가락을 들 용의는 있다는 식이다.특히 우리 정치라는 것은 마치 구정물 같아서 누구든지 거기에발을 담갔다간 몸을 더럽히기 십상이라는 게 일반적 통념이다.
그래서 그런지 조순시장 같은 이는 국민회의 참여라는 골치아픈일을 유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임기동안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한다.시장의 일이 정치인지,행정인지어떻게 구분하는지 알 수가 없다.
국가를 통치하는 행위에는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러나 정작현실정치는 기피하고,심지어 타기할만한 대상으로 보는 이런 이중적 행위들이 우리 정치의 수준을 묶어놓고 질적 발전을 못하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3金을 비난한다.그러나 3金이 그 숱한 비난과역경을 이겨내고 고래힘줄보다 더 끈질기게 생존해온 이유는 바로그들이 정치라는 오수 속에 깊이 몸을 담근채 험한 길을 수십년동안 풍찬노숙(風餐露宿)해가며 버텨온 때문이다 .그렇게 얻은 국민적 지지를 한갓 지역감정으로만 돌려버리는 것은 정치에 대한피상적인 관찰이고 안이한 비판일 따름이다.
하기야 대권 후보로 뛰어든다는게 쉬운 일일 수는 없다.미국의경우를 보더라도 강력한 후보감으로 꼽히는 콜린 파월 前합참의장은 『대통령에 출마해야할 어떤 소명을 느낀 바는 없다』면서도 『정치적 미래에 관해 명백한 것은 없다』는둥 알 쏭달쏭한 소리를 해대고 있다.그만큼 결단은 어려운 것이다.자칫하면 돈키호테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그러나 그는 그의 자서전 판매 전국순회연설을 통해 일단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는 있다.
정치란 타이밍이다.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할 시기가 됐다는 여러가지 징표들이 나타나고 있다.우리 정치를 걱정하고,국가를 경영할 경륜을 가진 인물들은 그들이 여당이든,아니면 재야인이든 그의사를 공개하고 국민의 지지를 다투는 과정에 참 여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대통령 시험은 바로 국민들의 광범한 지지를 모으는 과정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편집국장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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