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냉정한 이세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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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결승 3번기 제3국>
○·박영훈 9단(1승1패) ●·이세돌 9단(1승1패)

제17보(169∼177)=백◎로 석 점을 잡은 수는 아주 작아 보인다. 그러나 이곳이 흑의 선수라고 인정한다면(흑이 이곳을 두면 A로 끊는 수가 발생한다) 이 역끝내기는 ‘아주 크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형세나 상황에 따라 선수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어서(흑A에 백B의 패로 버틸 수 있다. 다만 이때는 중앙 전체의 옥쇄를 각오해야 한다) 이 장면은 참으로 미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세돌의 169는 냉정하다. 끊겨봐야 패니까 170 자리를 푹 뚫고 싶을 텐데 용케 참고 있다. 오늘의 이세돌은 완전히 딴사람 같다. 170 잇고 173 끊어 드디어 중앙에서의 대접전은 끝났다. 쌍방의 피해상황을 점검해 보면 백은 7점을 잡혀 18집의 손실을 입었고, 흑은 5점을 잡혀 10집 정도를 잃었다. 백의 사력을 다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흑의 중앙 봉쇄작전은 결국 8집 언저리의 전과를 남기고 끝난 것이다.

그러나 백의 손실은 또 있다. 좌하 백△들의 두꺼운 세력이 최소 서너 집의 가치는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게 그만 사라지고 만 것이다(어쩌면 이게 결정타일지 모른다). 형세는 미세하지만 흑이 1집반에서 2집반 정도 앞서고 있다. 아직 몇 가지 변수가 남아있지만 가슴 설레는 골인 지점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박영훈 9단이 176으로 두었을 때 이세돌 9단은 C로 잡아야 마땅함에도 황망히 177로 물러섰다. 이곳엔 176 대신 D로 젖혀버리는 극단의 수법이 있다. 잘 안 되는 수지만 이세돌은 그 꺼림칙한 맛이 사라진 게 고마워서 무심코 한 집을 손해봤다. 천하의 이세돌도 골인 지점이 다가오자 떨고 있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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