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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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모레 오후 세시 정길례 여사를 집에 오시라 했어요.미인도 보여주시기로 하셨다면서요?』 서재를 나서는 아버지 등에다 대고아리영이 뒤늦게 알렸다.
『그 시간에 지장이 있으시면 딴 날로 잡을게요.』 『아니다,괜찮아.그렇게 해.』 아버지는 딸의 표정을 살피듯 뒤돌아보더니문을 닫고 얼른 나갔다.
남편이 소파 끝에 앉았다.
『마녀 연구 하오?』 의자 위에 놓인 두 권의 마녀 책을 보고 화젯거리를 찾아 반가운 양 물었다.
문제의 핵심을 피해가려는 기미에 아리영은 침묵으로 대응했다.
벽시계가 모랫길 가듯 마른 소리로 시간을 새기고 있었다.
『이혼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 있소?』 느닷없는 질문에 아리영은 빈틈 찔린 것을 느꼈다.
『…실은 당신께 편지쓰기 전에 여러 차례 이혼을 생각해봤어.
편지쓰기 시작한 것도 그런 생각을 전할까 해서였는데 편지를 쓰면서 내가 얼마나 당신을 원하고 있는지 사무치게 깨달았어.당신이 바란다면 이혼도 각오하고는 있소.하지만 제발 한번 기회를 주시오.여기서 좌절하고 싶지 않소.』 울먹거림처럼 말꼬리가 흔들렸다. 『내려갑시다!당신 방서 간절하게 사죄하고 싶소.』 발버둥치는 소년의 자세로 남편은 아리영의 손을 끌었다.끈다기보다낚아채는 거나 다름이 없어 손목이 얼얼했으나 소리치진 못했다.
아버지 침실은 서재 옆방이다.아버지에게 신경쓰였다.
안방으로 내려오자 이부자리 위에 아리영을 앉히고 남편은 훌훌옷을 벗어 던져 알몸으로 엎드렸다.
『내 알마음의 사죄를 받아 주시오.』 아리영은 추악한 것을 보는 느낌으로 이불을 뒤집어쓰며 비명을 질렀다.마왕 생각에 또닭살이 돋았다.
남편이 재빨리 이불을 젖히고 아리영을 껴안았다.얼굴이 눈물로범벅이 되어 있었다.부엌에서 식사하는 소년의 얼굴이 갑자기 떠오르며 아리영의 날카로운 마음을 숨죽였다.형언키 어려운 측은함이 슬픔이 되어 번졌다.
저항하지 않는 아내를 남편은 쉽게 가졌다.
미스터 조 생각이 났다.
그 폭력에 가까운 순식간의 침입이 먼 지난날을 불러들였다.
일단 침입하고난 다음 미스터 조는 자신의 단단한 「육신」으로아리영의 「문」 어귀를 돌아가며 애무했었다.그 아스라한 기억이아리영을 쾌감으로 인도했다.처음 있는 일이다.
남편이 토하는 신음 소리가 최교수와의 밀통(密通) 장면을 잠시 떠올리게 하기는 했으나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미스터 조의 「흔적」은 최교수의 「흔적」을 지우는 특효약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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