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와 맞서 사투 … 가족 지킨 가장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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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달 20일오전 2시50분쯤 울산시 남구 삼산동의 한 아파트 1층 장모(41·회사원)씨 집. 열려있던 베란다 창문을 통해 침입한 최모(35·부산 북구)씨가 거실·작은방 등을 뒤지고 있었다.

훔칠만한 금품이 발견되지 않자 부엌에서 식칼을 집어들고 장씨 내외와 딸(11)이 잠든 안방으로 들어갔다.

최씨는 잠든 장씨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흔들어 깨웠다. 정신을 차린 장씨의 곁에는 부인(37)이 공포에 질려 떨고 있었고, 딸은 이런 사태도 모른 채 잠에 빠져 있었다. 일가족이 어떤 참변을 당할지 모를 위기였다.

장씨는 일어서자마자 갑자기 최씨에게 달려들어 이불을 덮어 씌운 뒤 거실로 밀어내며 “강도다. 문 잠궈.”라고 소리쳤다.

안방과 격리된 거실에선 한동안 격투소리가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부인이 안방문을 열었을 때는 최씨는 달아났고 장씨는 흉기에 찔린 목과 가슴에 피를 쏟은 채 숨져 있었다. 장씨의 부인은 경찰에서 “남편이 우리가 다칠까 봐 거실로 나가 강도와 싸웠다”고 진술했다.

울산남부경찰서는 아파트 주차장에 설치된 폐쇄회로TV와 울산고속도로 톨게이트 CCTV 기록을 통해 차량을 조회, 최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최씨의 내연녀가 사는 대구에 형사대를 잠복시킨 끝에 6일 긴급체포했다.

최씨는 칼에 오른쪽 가슴과 팔을 찔려 봉합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였는데도 경찰 검거망을 피하기 위해 병원을 찾지 않아 검거 당시 상처가 크게 덧나 있었다. 최씨는 경찰에서 “격투 중 장씨에게 칼을 뺏겨 찔린 상처”라고 진술했다.

울산 남부경찰서 주석돈 형사과장은 “유족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장씨는 평소 가족사랑이 각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사건 당시에도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강도를 안방에서 거실로 몰아냈던 것같다”고 말했다.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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