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英雄論,그때와 지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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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집에서 채소나 기르는 저를 승상(丞相)께서 몸소 보자고 하시니,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어젯밤 돌풍(突風)이 심상치않소.천둥 번개가 치고 나무가 뿌리째 뽑혔는가 하면 세상이 어둠속으로 가라앉았소.아무래도 용(龍)이 풍운조화를 일으키는가 봅니다.용이란 세상의 영웅과 같지요.공(公)은 지금 천하의 영웅이 누구라고 생 각합니까.』 『제가 어찌 영웅을 가릴 만한 눈을 가졌겠습니까.』 『겸손한 말씀이오.들어본 이름이라도 말씀해 보시오.』 『호남의 김대중(金大中)은 어떻습니까.찬란한 민주투쟁 경력이 있고 세번씩이나 대권에 도전한 백전노장입니다.거기다 확고한 지역기반이 있습니다.실로 그의 성화(聲華)는 亞太를 넘어 사해(四海)에 떨치고 있습니다.어찌 영웅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용은 자유자재로 자신의 몸을 키웠다 줄였다 하며,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오.그런 점에서 김대중은 용을 닮았소.그러나 그가 몸을 키우면 키울수록 먼저대로 숨으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그러나 그는 되묻습니다.자기가 민주주의를 위해 감옥에 가 있는 동안 대를 이어 부귀를 누린 사람들이 자신보고 물러나라고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이런 생각 또한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사람들과의 약속을 어겼소.사람들의 이해를 구하고 지지를 받으려면 아직도 산을 넘고 또 산을 넘는 고비가 많을 것이오.그는 아직 영웅이 아닙니다.』 『충청의 김종필(金鍾泌)은 어떻습니까.풍운아로 입신해 국가 경영의 경험을 쌓은바 있고 부도옹(不倒翁)의인내심도 출중합니다.그 역시 확고한 지역기반이 있습니다.어찌 영웅이 아니겠습니까.』 『용은 우주를 날아 다니기도 하고,이슬방울에 몸을 숨기기도 하오.김종필도 능히 그런 조화를 부릴줄 압니다.그러나 그의 최대의 적은 세월입니다.그는 이미 영웅이 아닙니다.』 『부산의 이기택(李基澤)은 어떻습니까.잘만 하면 다수의 중산층을 흡수할 수 있는 영웅이라고 보는데요.』 『영웅이라고 일컬을 만한 자는 가슴에 웅지를 품어야 하오.그는 영웅이 아닙니다.』 『경남의 최형우(崔炯佑),경북의 김윤환(金潤煥),서울의 박찬종(朴燦鍾),중부의 이한동(李漢東),대구의 박철언(朴哲彦),전북의 김원기(金元基)등도 당세의 영웅이 될만한 인물들이 아닙니까.』 『영웅이라면 뱃속에 지모(智謀)가 가득하여 우주의 기(機)를 비장하고,천지의 지(志)를 내뱉어야 하오.그들은 영웅이 아닙니다.』 『조순(趙淳).이회창(李會昌).노재봉(盧在鳳)은 어떨까요.』 『유방(劉邦)은 영웅이라 불러도 장량(張良).소하(蕭何)는 영웅이라 부르는 법이 아닙니다.』 『젊은 기라성들,김덕룡(金德龍).정대철(鄭大哲).이부영(李富榮).홍사덕(洪思德).이철(李哲)등은 어떻습니까.』 『타오르는 꿈을 안고 사는 젊은이들은 보기에는 좋습니다.그러나 흥겹게 노래하자느니,괴로움을 강물에 버리자느니 하는 것은 영웅의 길이 아닙니다.』 『그러면 천하의 영웅은 누구란 말입니까.』 『천하의 영웅은 나 조조(曹操)와 그대 유비(劉備)두사람 뿐이오.』〈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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