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의 공허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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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호 19면

요즘 하도 떠들어대서 지겨운 단어가 하나 있다. ‘스타일’이다. 이 단어는 ‘라이프’와 함께 붙어 ‘라이프스타일’로도 자주 쓰인다. 되돌아보면 20세기 중반까지는 ‘스타일’이 아닌 ‘라이프’의 시대였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잡지가 ‘LIFE’다.

‘LIFE’는 제호 그대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인간의 달 착륙 같은 20세기의 ‘삶’을 기록했다. 그러다 20세기 후반 들어오면서 ‘라이프’를 누르고 ‘스타일’이 부상한다. 할리우드 스타와 명사들의 스타일과 가십을 다루는 ‘IN STYLE’을 비롯한 잡지들은 ‘스타일’을 호처럼 달기 시작했다.

흔히 예술작품을 ‘형식’과 ‘내용’으로 나눠 분석한다. 그 틀을 따르면 ‘라이프’는 인생의 내용이고, ‘스타일’은 인생의 형식이다. 동양의 예술관에서 형식보다 중요한 건 내용이다. 하지만 근현대를 거치며 형식이 부쩍 중요해지더니 이제 형식만으로도 예술이 된다.

인생관도 이런 순서를 밟는 것 같다. ‘인생 그 자체’가 중요했던 시대를 지나 이제 ‘어떻게 보이는 인생인지’도 그 못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시대가 됐다. ‘라이프’가 지고 ‘스타일’이 뜬 게 그 증거다. 결국 두 단어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좌표로 만나 시대의 인생관을 함축해 보여준다.

그런데 난 역시 살짝 ‘꼬인’ 사람인가 보다. 대오의 선두에서 스타일의 지엄함을 외쳐야 하는 신분임에도 ‘스타일’의 발흥이 곱게만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는 ‘역시 스타일보단 라이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보다. 이런 고백은 내가 일하는 잡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진 않지만 ‘옷 잘 입어야 한다’는 소리를 자주 듣다 보니 ‘옷 좀 못 입어도 사람만 괜찮으면 되지’ 하는 반발이 고개를 치켜들 때가 있다.

옷은 죽이게 입지만 성격도 죽이고 싶은 사람 만나면 ‘스타일의 공허함’을 달랠 길 없다. 스타일과 인격을 결부시킬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런 사람 만나면 진짜 이런 기분 든다.

이런 내 귀에 요즘 희망의 속삭임처럼 들리는 말이 있다. “근데 그 사람 콘텐트가 없어.” 여기서의 ‘콘텐트’는 ‘내용’이다. ‘주관’ ‘생각’ ‘알맹이’ 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콘텐트가 없다’는 건 ‘내용이 부실하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런 말은 ‘스타일’ 즉 ‘형식’의 발흥이 낳은 부작용 때문에 ‘내용’이 다시 부각되는 현상의 신호탄이 아닐까 싶어 반갑다.

당신이 내 생각에 공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라이프’와 ‘스타일’ 그리고 ‘콘텐트’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우리 인생은 내용과 형식이 균형을 이뤄야 하니까.


현직 남성 잡지 기자인 송원석씨는 ‘신사, 좀 노는 오빠, 그냥 남자’를 구분 짓게 하는 ‘매너’의 정체를 파악, 효과적인 정보를 소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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