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또 미뤄진 통신사업자 선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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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나라의 통신시장은 세계무역기구(WTO)와의 합의에 따라 98년부터 개방하도록 돼있다.선진 외국 통신사업자들이 국내 통신시장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그 전에 이 시장이 국내 업자에게 먼저 개방돼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보통신부장관은 금년말 안에 끝내겠다던 7개 통신사업의 사업자 선정을 내년 6월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이 연기에 대한 변명으로 표면적인 이유와 이면적인 이유가 언급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한마디로 선정기준을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이 선정은 신청자가 제시하는 기술과 사업능력의 적합성,연구개발비 출연 금액,이 두가지 점수에 의해 결정하는 것으로 돼있다.그런데 이 두가지에서 아직 정보통신부는 자 체의 기준조차 확립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면적인 이유는 「통신사업자 선정이 내년 4월에 있을 총선거에 영향을 줘서는 안되겠다」는 배려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이는 정치의 눈치 아래 움직이는 행정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경제의뒷다리를 잡고 늘어지는 전형적인 광경이다.
92년에 있었던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때의 극도로 궁색했던당시 체신부 작태의 재판이다.그 때는 「눈 감고 아웅하는」격의궁여지책으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사업자 선정 작업을 떠넘기는 설득력 없는 일을 했다.정부는 반드시 스스로가 해야 할 일로부터도피했던 것이다.
만일 이번 연기가 앞의 두가지 이유 가운데 표면적 이유 때문이라면 정보통신부 관계자들은 그 무능과 게으름에 대한 책임을 엄격하게 져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정보 통신의 효율성이 국제 경쟁력을 결정하는 가장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안그래도 엄청 실력이 뒤처져 있는 국내 업자의 경쟁 채비를 도와주지는 못하고 뒷다리를 잡아끄는건 용서하기 어렵다.
만일 내년 총선거를 의식한 또 다른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에연기를 선언하게 된 것이라면 우리 국민은 헤어날 수 없는 저주스런 정치의 늪에 빠진 스스로의 운명을 탓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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